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패셔니스타 Aug 09. 2024

나는 존버한다

주식 투자와 자녀 양육에 관한 나의 필살기

 남 얘기 같지 않아서 괴로운 마음에 글을 남깁니다. 삼성전자로 재미를 좀 봤더니 주식 투자에 재능이 있는 줄로 착각했어요. 부모님 노후 자금까지 가져와 굴렸습니다. 수익이 나는 게 보이자 회사 다니는 시간이 아까웠어요. 다니던 회사까지 그만두고 전업 투자를 시작했습니다.

사무실을 얻고 근사한 컴퓨터와 장비를 들여와 똥폼을 잡았죠. 매매기법을 공부하며 신중히 투자했지만, 주가는 제가 들어가면 빠지고 손절하고 나오면 오르더군요. 하지만 만회할 수 있을 것 같아 신용으로 투자했어요. 모두 날려 먹고 대출까지 받았습니다. 몽땅 잃었습니다. 이제 제게는 10억이 넘는 빚만 있을 뿐 집도 절도 없습니다. 아내와는 진작에 이혼했고요.

 유튜브 알고리즘 주식 관련 영상에 달린 댓글 하나에 유난히 눈길이 갔다. 그 아래 달린 댓글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6월 2일에 깡통 찬 개미입니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가족에게 미안해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제 돈은 괜찮지만, 누나에게 빌린 8천만 원 때문에 육신이 갈기갈기 찢기고 피가 바짝바짝 마릅니다.

 2021년 1월 말, 10만 전자를 꿈꾸며 8만 원대 중반에 덜컥 매수 버튼을 눌러 버렸던 내 손가락, 잘라 버려도 시원찮은 이 몹쓸 손가락은 요즘 장이 개시될 때마다 매도 버튼 위에서 안달복달 춤을 춘다. 더 오를 거라는 기대감에 은행에 안전하게 모셔두었던 정기예금까지 탈탈 털어 주식을 사 들일 당시는 몰랐다. 내 손가락이 무슨 짓을 했는지. 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정신없이 파랗게 고꾸라지는 주식창을 보고 나는 망연자실해졌다. 내일은 본전을 만회하겠지, 곧 조정이 끝나고 10만 원까지 오르겠지 바라고 또 바랬던 세월이 벌써 3년 하고도 반이나 지났다.


 ‘축하해. 이제 수익 좀 나겠네.’ 남편에게서 온 문자에 그동안 까맣게 잊고 지내던 본전 생각이 났다. 증권사 앱을 켜고 들어가 보니 과연 남편 말대로 평가손익에 빨간 불이 들어와 있었다. 상반기 사상 최대의 수익이 나 그 여파가 연말까지 갈 거라는 기쁜 소식이 뉴스 지면을 도배했다. 기다림의 결실이 이제야 나타나기 시작하는구나. 3년이면 많이 기다렸다며 그만 손절하고 다른 주식으로 갈아타라는 주위 권고에도 꿈쩍하지 않고 버텼던 나를 폭풍 칭찬했다. 교실로 재잘거리며 들어오는 아이들에게 인사하는 내 목소리가 평소보다 한 옥타브 더 높았다.


 상반기 강세이던 바이오 종목으로 제법 큰돈을 만졌다며 우쭐해하던 친구가 그놈의 삼성전자에 그만 목매고 자기가 추천하는 종목에 베팅해 보는 게 어떠냐고 살살 꼬드겼지만, 나는 일편단심 삼성전자였다. 기업분석 해본 적도 없고 음봉이 뭔지 양봉이 뭔지 하나도 모르는 주식 까막눈이지만 삼성전자가 절대 망할 기업이 아니라는 건 안다. 미국의 애플이나 구글이 절대 망하지 않을 것처럼. 5만 원대까지 하락했던 피 말리던 시간을 견디며 불안을 떨칠 수 있었던 건 바로 삼성전자에 대한 확고한 믿음 덕분이었다.


 주가 이동선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인생의 희로애락을 보는 것 같다. 투명하고 건실한 경영에 직원과 경영진이 한마음으로 훌륭한 성과를 내고 경기 흐름까지 잘 타는 기업은 전 고점을 넘어 우상향으로 쾌속 행진한다. 하지만 아무리 시원한 흐름도 1일 차트로 보면 몇 분 몇 초 사이 미세한 한숨과 희열, 떨림이 존재한다. 종가로 하루가 마무리되기까지 수천, 수만 번의 치열한 등락 속에 사람들은 천국과 지옥행 열차를 수없이 갈아탄다. 발달장애아를 키우는 나의 하루도 마찬가지다.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정의 골에 나를 맡기다 보면 일어나지도 않을 쓸데없는 걱정으로 자신을 나락에 빠뜨리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발달장애 판정을 받고 세상이 끝난 것 같아 절망했던 그날부터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7살 이상의 지능은 기대하지 말라며 현실을 직시하라던 차가운 얼굴, 학교나 학원에서 상담 전화만 와도 가슴이 철렁했던 날, 따돌림과 폭력이 아이에게 가해지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다 뒤늦게 죄책감과 분노로 하늘이 무너졌던 날. 이런 악재에도 하루를 버틸 수 있게 해 준 소소한 희망과 행복 덕분에 아이는 다행히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티 없이 밝고 건강하게 자랐다.


 절대 오지 않을 것만 같던 아이의 고등학교 졸업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올해가 가면 딸은 학교라는 안전한 울타리를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시작을 할 것이다. 취업 준비를 위한 특수학교 전공과 또는 대학교 내 발달장애아를 위한 3년제 프로그램이라는 선택지를 받아 든 우리 부부는 요즘 생각이 많아졌다. 딸아이가 대학 생활을 통해 시간을 벌며 양질의 교육을 받았으면 좋겠다. 삶을 영위할 최소한의 비용 정도는 스스로 벌 수 있도록 취업도 할 수 있다면 더 좋겠다. 어떤 선택을 하든 앞으로 10년은 더 딸에게 물리적,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말자고 남편과 약속했다.


 빨간 글씨로 바뀐 수익금 덕분에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닌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며칠 사이 삼성전자 주식은 미국 경기 악화의 영향으로 또 하락했다.

 “세상 사는 게 다 이런 거겠지? 장밋빛일 때도 있고 암울할 때도 있으니 말이야.”

 다시 마이너스가 된 계좌를 들여다보며 투덜대는 나에게 남편이 말했다.

 “그래도 삼성전자잖아. 믿어보자고. 자기는 흔들리지 않고 기다리는 데 선수잖아.”


흔들리지 않는 데는 자신 없지만, 기다리는 데는 나를 따라올 자가 없다. 우상향으로 쭉쭉 뻗어가는 다른 주식을 보며 차라리 저걸 살 걸 후회할 때가 왜 없었을까. 하지만 나는 우리나라 최고 기업인 삼성전자의 저력을 믿는다. 그리고 황금 씨앗을 품고 앞으로 무한효도할 우량주인 내 딸의 무한한 가능성도 굳게 믿는다.


 “그래, 까짓 거 존버하는 거지.”


 호기롭게 큰소리치며 남편과 한바탕 웃었다. 날씬해져서 예쁜 원피스를 입겠다는 소박한 꿈을 꾸며 열심히 실내 자전거의 페달을 밟고 있던 딸이 영문도 모르고 우리를 따라 함께 웃었다.      

잘 자라줘서 고마운 딸아이

                    

매거진의 이전글 대발이 아부지, 세웅 씨[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