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뺄셈이 아니라 덧셈
이제 나도 지천명을 훌쩍 넘겼다. 세상 그 어느 것도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나이다. 그런 내가 행복에 대해서만은 아직도 유나와 같은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머릿속에 나만의 이상향을 그려놓고 그에 미치지 못하면 하나둘 가위로 잘라내며 나의 입지를 좁고 외롭게 만들었던 날들이 떠올랐다. 문제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답답한 환경이 아니라 편협한 나의 시각과 포용력 없는 마음이었다. 시각과 포용력을 넓히지 않으면 뺄셈 공식으로 여기저기 걸친 방해물을 모조리 걸러낸다 해도 진정한 행복은 찾아오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지겹도록 반복되는 월요일 아침이지만, 나는 전과는 조금 다른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날은 다리가 다 나아서 다시 학원에 나오게 된 성범이를 비롯하여 9명의 완전체가 모두 모이는 날이었다. 자료를 바삐 출력하느라 윙윙거리는 복사기 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앉아 있으려니 교실 창문 너머로 눈알 두 개가 또록또록 굴러다녔다. 거의 한 달 만의 등원이 낯설었던지 평소처럼 소란스럽게 웃으며 문을 벌컥 열지 못하고 밖에서 우물쭈물하고 있던 성범이었다. 예전과 사뭇 다른 아이의 모습에 나는 그만 웃음이 터져 버렸다. 성큼성큼 다가가 문을 열고 반갑게 맞이했다.
“와, 성범아! 이게 도대체 얼마 만이야? 그동안 잘 지냈어?”
성범이는 수줍게 방긋 웃더니 점퍼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나에게 건네주고는 연신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새콤달콤 두 알이었다.
“이거 선생님 주는 거야?”
한껏 놀란 표정을 지었더니 얼굴이 발그스름해진 아이는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아이가 보는 앞에서 껍질을 까서 넣으니 입안으로 퍼지는 새콤한 딸기 맛 캐러멜 때문인지 성범이의 뜬금없는 애정 표현 때문인지 눈이 세상 넓은 줄 모르고 길게 가늘어지며 행복감이 침샘을 퐁퐁 두들겼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과 눈 맞추고 이야기 나눠 본 적이 최근에 있었던가. 학교에서 무슨 재미난 일이 있었는지 주말에 어디 다녀왔는지 물어본 게 언제 일이던가. 진도 나가는 데만 급급하여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웅성거리거나 흐트러지면 싸한 눈길로 쌀쌀맞게 굴었던 일이 생각나 가슴이 뜨끔했다. 한 달의 공백 후 다시 만난 그날의 수업이 사제간의 흐뭇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냐마는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난 반가움에 압도된 건지 9명의 완전체는 수업 내내 지옥을 방불케 하는 카오스를 연출했다. 성범이는 여전히 자기 차례에도 안드로메다 행성을 돌아다니느라 바빴고, 주원이는 아이들의 실없는 소리에 끊임없이 꼬리를 달며 내 신경을 갉작거렸다. 그날도 단어시험을 망친 상민이의 입은 뾰로통하게 툭 튀어나와 수업이 끝나도 들어갈 줄 몰랐다. 그리고 나는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 실성한 듯 자꾸만 웃음이 터져 나와 수업은 말 그대로 대환장 파티였다.
그런들 어떤가. 아무리 완벽한 동그라미를 그려보려 해도 내 맘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인데. 애초에 이렇게 개성 충만한 아이들을 내가 만든 얌전한 동그라미 틀 속에 억지로 집어넣으려 했던 것이 잘못이었다. 원 밖으로 삐뚤빼뚤 튀어나온 아이들과 우왕좌왕 부대끼며 나의 내면을 다듬어야 소중한 하루를 예쁘게 그려낼 수 있다는 사실을 예전에는 왜 몰랐을까? 시선의 각도가 조금만 비꼈을 뿐인데도 아이들이 그날따라 더 사랑스러웠다.
“선생님, 오늘 왜 자꾸 웃어요?”
“너희들이 너무 귀여워서.”
평소와 다른 내 모습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교실을 나선 아이들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나는 복도에 서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