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공화국에서 본질을 지키는 법
캔슬 문화(cancel culture)는 특정 인물의 잘못이나 논란에 대한 사회적 비판을 넘어, 그 사람 자체를 무대에서 지워버리려는 현상이다. 캔슬 문화는 부조리한 것에 참지 않는 저항 정신으로 표출되며 우리나라에서는 '나락' 문화로 자리잡기도 했다. 비판은 사회의 건강한 작동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캔슬”은 종종 문제의 본질을 흐리며 사람 자체를 희생양으로 만든다. 최근 캔슬 문화는 극단적 대중문화의 양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우리는 언제부터 잘못을 비판하는 대신 사람 자체를 ‘삭제’하는 데 익숙해진 걸까?
올해 국내에서 가장 큰 캔슬의 대상은 배우 김수현이었다. 배우 김새론의 안타까운 죽음에 처음 사회가 던진 질문은 “유명인의 자살을 어떻게 예방할 수 있었을까?”이었다. 생활고로 고생한 고인에게 부자인 김수현의 행동의 정의로웠냐는 질문이, 이내 미성년자와의 연애 문제라는 초점으로 이동하면서 본래의 논점에서 이탈했고 대중이 그에게 기대했던 대처를 보여주지 못하자 감정적인 캔슬 현상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최초의 비극으로 이어진 캔슬 문화는 자정 작용 없이 또 다른 타겟으로 옮겨 갔을 뿐이다.
이러한 흐름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마녀사냥과 같은 방식으로 불안을 해소해왔다. 르네 지라르(René Girard)의 ‘희생양 메커니즘’ 이론에 따르면, 사회는 내부의 긴장과 불안을 특정인에게 투사하여 제거함으로써 질서를 회복하려 한다. 누군가를 끌어내릴 때는 순간적인 카타르시스와 안도감을 줄 수 있으나 이 반복은 근본적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또 다른 희생양을 끊임없이 필요로 하는 악순환을 만든다. “내가 아니면 된다”는 안도감 뒤에는 “언젠가 내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꽃 피게 한다.
캔슬 문화의 이면에는 개인이 느끼는 불만족이나 불안을 외부 대상에 투사함으로써 자신을 합리화하려는 심리가 깔려 있다. 이는 일시적인 분노 해소에는 도움이 되지만, 실제 삶을 바꾸거나 나아지게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사회 전체가 언제든지 누군가를 끌어내릴 수 있는 잠재적 전쟁과 혐오의 문화 속에서 살아가게 만든다. 결국 서로의 성장을 저해하고, 공포와 불신을 재생산한다. 결국 모두가 ‘언제든 캔슬될 후보자’가 되는 셈이다. 궁극적인 피해자는 "그래서 내가 안 유명해지는거야."라고 발전을 합리화하는 자기 자신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가 진정으로 다뤄야 할 본질에 집중하는 태도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다양한 정보와 논란이 쏟아질수록 본질을 파악하고 기억하는 힘이 필요하다. 김새론 사건에서도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연애 논란’이 아니라, 또다시 누군가가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 우리 사회의 태도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하는 질문이었다. 비판의 대상이 여러 개라면 하나씩 나누어 차근 차근 담론을 형성하고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성숙한 문화일 것이다.
비판은 ‘사람을 없애는 칼’이 아니라, ‘사회 문제를 벼리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캔슬문화는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사람 자체를 지워버린다. 건강한 비판 문화는 사람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교훈을 얻어 더 나은 사회로 바꾸는 힘이다. 이제는 희생양을 찾는 습관을 멈추고, 본질에 집중하는 사회적 성숙으로 나아가야 한다. 나아가 K-엔터 문화는 전세계가 관심 갖고 영향을 받는 문화이다. 스타공화국의 위상 답게 다음에 캔슬 버튼을 누르려 할 때, 생각해 볼 포인트가 있다. “내가 지금 지우려는 건 문제인가, 사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