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히 돌아가줘서 고마워
지금, 나의 사랑스러운 세탁기가 조용히 돌아가고 있어요.
12년 전, 독립할 때 잠깐 쓰고 중고로 내놓으려고 샀던 3kg짜리 작은 세탁기.
그 아이와 이렇게 오래 함께할 줄은 몰랐어요.
백수가 된 지 2년 반이 넘었어요.
몸도 아프고, 마음도 아팠어요.
조금만 쉬면 괜찮아지겠지 했지만,
쉬면 쉴수록 더 깊이 가라앉았고, 결국 무너졌어요.
돈이 떨어지자 모든 것이 초라하게 느껴졌어요.
심지어 내 세탁기조차도.
서울로 돌아와 처음 자리를 잡은 이곳은
상가건물 2층, 바닥은 얇고,
아래층 오토바이 소리에 심장이 철렁이고,
올라오는 담배 냄새에 창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어요.
하수구는 자주 막혔고,
내가 마주한 이 작은 공간 속에는
기분 나쁜 기류들이 겹겹이 쌓여 갔어요.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날 절망하게 만든 건
세탁기였어요.
세탁이 끝난 뒤 뚜껑을 열면
하얀 거품이 뚜껑 안쪽에 잔뜩.
숨이 턱 막히고, 심장이 화끈거렸어요.
수건으로 닦아내고 다시 돌렸지만,
여전히 뽀얀 거품이 손에 묻어 나왔죠.
결국 허리를 굽혀 손으로 헹구고 또 헹구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어요.
“너마저, 왜 나를 괴롭히는 거야…”
그때부터였어요.
모든 게 미워지기 시작한 건.
좁은 집,
잘 빨리지 않는 청소기,
답답한 공기,
그리고 그런 상황을 감당하고 있는 나 자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무사히 돌아가기를 기도하며 빨래를 넣던 날들.
하지만 결국 청소기가 고장이 났고,
강아지 털을 빨아들이지 못한 채
힘없이 윙윙 소리만 냈어요.
나는 우두커니 섰고,
그러다 문득,
처음 독립했을 때 쓰던 부직포 청소기가 떠올랐어요.
새벽 배송으로 받은 부직포를 밀대에 끼우고
바닥을 쓱쓱 밀며 웃음이 났어요.
“아… 정말,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구나.”
그리고 지금,
나는 두 번째 독립을 준비 중이에요.
세상의 기대와 인정으로부터,
가난과 두려움으로부터,
그리고 오래된 원망들로부터.
그 바닥에서,
나는 무사히 돌아가는 내 쁘띠 세탁기를 다시 사랑하게 되었어요.
친환경 세제로 바꾸자 거품도 사라졌고,
내 마음속 거품도 조금은 가라앉았어요.
2년 반이나 쉬었는데,
이 정도면 그래도, 꽤 괜찮은 거 아닌가요?
바닥은 밀대로 밀면 되지.
이래도 저래도,
다 괜찮다.
사랑해, 나의 쁘띠 세탁기.
우리, 아직 괜찮아.
어떻게든, 되겠지 뭐.
“바닥은 밀대로 밀면 되지.”
이 말이 오늘의 주문이에요.
엘리의 정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