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22일
지난 한 주 동안 휴가차 제주에 머물렀다. 근속 20주년을 맞는 남편과 당초 올 봄에 물 건너 해외를 가려고 했으나 코로나로 그러지를 못하니 제주라도 가보자는 마음이었는데 다들 같은 마음인지 숙소를 구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다행히 숙소는 지난 가을 아들과 자전거 여행으로 왔을 때 묵었던 고산에 간신히 구했고, 결론적으로 고산에서 외식 한번 안하고 삼시세끼를 해먹으면서 숙소 주변만 가볍게 산책을 했는데 코로나와 무관한 일상이 마치 제주 한달살기를 한 것 같다.
집주인 말씀은 고산이 제주에서 제일 순한 사람들이 모여서 산다고 하신다. 동네에서 슬슬 걸어 수월봉으로 가 전기자전거를 타고선 차귀도를 한번 보고 오고(원래 같으면 바다낚시를 하겠다고 덤볐겠으나 자제하고), 페친이신 강미선 교수님께서 추천해주신 '무명서점'도 슬리퍼를 끌고 가선 들려본 후 그 아래 유명제과에서 꽈배기를 사먹었다. 동네에는 큰 마트가 두 개 있는데 이 동네 해외에서 오신 분들이 계셔서 그런지 금성마트 냉동고에는 식용개구리도 팔고 있어 신기했다.
충분히 여유있게 쉰 것 같고, 좋은 기억도 남겼는데 특히 무명서점에서 산 김순이 여사의 시집이 마음에 든다. 작년에 내가 번역한 책의 출판사인 다빈치의 박성식 대표님께서 김종철 선생의 <오름나그네>를 출간하시며 그 책에 실리는 부인 김순이 여사의 서문을 보내주셨는데 글이 너무나 징하여 가슴이 뭉클했었다. 도대쳬 어떤 분인지 궁금했는데 무명서점 한 켠에 두 사람의 책이 함께 놓여있어 김순이 시집 <제주야행>을 냉큼 집어 구입했다.
김순이 선생님은 국문학을 전공하고 제주에서 교사로 재직하면서도 소설을 신문에 연재하며 꾸준히 활동하셨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박물관 대학의 전과정을 마친 다음 10년 후 제주도민속박물관의 민속연구원이 되셨고 제주의 식생활, 짚풀공예, 여성 그리고 제주신화 등을 조사하고 발표하는 등의 활동을 하고 계시다. 박대표님 말씀으론 '제주의 여신'이시라는데 그 분의 소신과 열정, 글의 깊이가 크게 와닿았고 왠지 제주를 좀 더 알게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