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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치스러운글 Mar 02. 2021

인생의 해 뜰 날

훨훨 나는 듯하다고.

우리는 종종 인생을 하루에 비유하곤 한다.

24시간을 인생에 비유했을 때 지금 20대라면 이제 해가 조금 떠버린 새벽 같은 시간이니 늦지 않았다 라고 말하곤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얼마 전 인생의 해 뜨는 시간은 모두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얼마 전 티브이에 평생교육원에서 한글을 배우시는 할머니를 보았다. 인터뷰에 나오신 할머니는 어렸을 적에 여기저기 절을 전전하며 어렵게 사셨다고 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 비로소 독립을 하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이 한글을 배우는 것이었다고. 할머니는 힘들고 고난했던 삶 속에서 벗어나 글을 배우며 공부하는 지금이 지금까지의 삶 중에서 가장 행복하다 했다. 훨훨 나는 듯하다고 표현하며 말씀하시는 눈빛이 반짝반짝거리고 정말 행복해 보이셨다. 할머니에게는 지금이 시작인 것처럼. 할머니에게는 우리의 10대 20대가 지금인 것 같이 느껴졌다. 할머니에게 인생의 해 뜰 날은 바로 저무는 나이인 지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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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은 나에게 유독 특별한 한 해처럼 느껴졌었다. 마지막 20대라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인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나는 20대를 지내면서 기분 좋은 일도 참 많았고 인생에서의 성장도 많이 이루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 30대를 맞이한다는 것은 이제는 내 성장을 인생에 고착화시키고 좀 더 안정적인 하루하루를 보내는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너는 만약 20대 초중반으로 돌아가라고 하면 돌아갈 거야?"


라는 질문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해가 저물기 전이 좋다면 젊을수록 좋을 것인데 보통의 내 친구들은 (비트코인을 사러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면)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한다. 그때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더 여유롭다는 이유이다. 그때의 고민들보다는 확실히 지금의 고민들이 더 작고 소소하기 때문이 아닐라나.


그렇게 보면 어쩌면 인생의 시계는 있어도 해 뜰 날은 마음먹기 다른 것일 수도 있다. 인생의 황혼기인 해가 저무는 때에도 해가 뜨는 것처럼 기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달이 떠서 구름에 걸치는 시간을 해 뜰 날처럼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꼭 해 뜨는 시간의 인생이 해 뜰 날이 아니라 훨훨 날으는 그 시간이 낮이든 저녁이든 인생의 황금기가 아닐까. 인생의 해 뜰 날은 20대 30대가 아닐 수도 있다.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날이 앞으로 다가올 수 있다. 혹은 지금은 좋지 않아도 언제 해 뜰 날이 다가올지 모르는 일이다.


시작은 이른 새벽에 시작해도 인생의 해 뜰 날은 저녁에 올 수 있다.

대기만성이라는 사자성어나 어느 드라마에 나온 가을의 코스모스라는 비유와 같이 느리게 오는 날도,

행복을 느끼며 이 행복이 끝을 그리며 오는 불안한 마음도,

송두리째 작은 흔적만을 남기고 사라지는 날이 올 수 있다.


노을 진 저녁에 산 너머로 날아가는 새들처럼.

한글을 뒤늦게 배워 훨훨 날으는 할머니처럼.

고민 많던 그때를 지나 두 땅에 발 딛고 서있는 누구나의 모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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