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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치스러운글 Nov 06. 2020

엄마가 완경을 했다.

이제 멋진 풍경들을 즐기기를.

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드나드는 화장실에서 무언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낀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었다. 우리 집은 여자만 셋. 한 달에 한 번 주기적으로 찾아온다는 대자연의 그분이 거의 한 달 내내 지속되는 집안이었다. 그러던 우리 집의 화장실에, 생리대가 예전만큼 줄지 않는다. 엄마가 완경을 했다.


엄마는 젊은 엄마였다. 지금이라고 생각하면 한참 놀러 다닐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고 허니문 베이비로 나를 낳았다. 나는 어릴 때 엄마의 존재를 그저 나를 보살펴 주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부모님으로써의 엄마만 받아들였다. 그리고 내가 그때의 엄마의 나이가 되었을 즈음에는 엄마가 대단해 보였다. 나는 그 나이에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조금은 무서웠다. 아직 한참 남은 나의 삶을 이제 가정을 위해서 보내겠다고 결정하는 것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 나이보다 좀 더 들은 지금 내 나이. 나는 완경을 한 엄마가 자랑스럽다.


엄마는 갱년기를 아주 무난하게 지나갔다. 갱년기 엄마를 둔 주위 친구들은 너무 힘들다고 토로하기도 하였으나 나는 그렇지 않았다. 사춘기가 온 아이만큼이나 받아주기 힘들다는 그 갱년기를 우리 엄마는 혼자 꾹꾹 참아내며 지나갔다. 얼굴이 자주 벌게지고 몸에 열이 올라 더워서 잠을 자지 못해도 엄마는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다. 그리고 점점 줄어드는 생리의 주기와 간격에 여자로서의 몸을 다한 것 같다고 담담히 말했을 때에도 나는 엄마가 속으로는 무척이나 아려했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엄마는 요즘 그림 그리는 취미에 빠져있다. 워낙에 집중력이 좋은 사람이라 앉은자리에서 한두 시간씩도 붓을 들고 있기도 한다. 가끔 강아지를 데리고 혼자 살랑살랑 산책을 다녀오기도 한다. 그리고 취미 클래스를 들으며 집에서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한다. 안경을 쓰고 열심히 집중하는 엄마를 보고 있자면 무언가 뭉클하면서도 사춘기 지나간 내 자식을 보는 것처럼 애틋하고 자랑스럽다. 엄마도 이제는 자식들에게서 벗어나 혼자만의 취향과 재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까. 괜스레 미안해진다.


어느 날 문득 내려보며 구경해가는 메신저 프로필들 사이에 어린 남자아이 두 명의 사진이 보인다. 대학생 시절에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던 교수님의 프로필이었다. 멋있게 양복을 차려입고 패션 일러스트를 그리던 교수님의 세련된 이미지가 프로필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51개의 쌓인 프로필 사진이 모두 아이들의 사진들이었다. 어느새 교수님의 삶에도 가득히 자리 잡은 아이들. 나는 이런 부모로서의 교수님도 충분히 멋있다.


요즘은 내가 상상할 수 없는 미래의 내 모습을 엄마를 통해 미리 보기 하는 것 같다.

엄마가 이제 엄마로서의 삶보다 여자로서, 한 명의 사람으로서, 개인으로서의 시작을 했으면 좋겠다.

완경은 여자의 폐경을 부르는 다른 말이지만, 다른 한자어로는 풍경을 즐기는 행위를 말한다.

나는 엄마가 이제 힘들게 올라온 산들을 뒤로하고 여유롭게 돗자리를 펴고 눈 앞에 펼쳐진 멋진 풍경을 즐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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