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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치스러운글 Jan 24. 2021

한 평짜리 마음도 한 뼘짜리 거리도

여유의 중요성

누군가는 말한다. 예민한 것은 타고나기 마련이고 무언가를 갈망하며 타들어가는 것은 어릴 때의 영향이거나 애정과 관심을 가지기 위한 욕망이라고. 나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요즘 그 생각을 부정한다.


어쩌면 위의 말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 나의 모습들을 ‘어쩔 수 없이 가지고 태어난 것’으로 승격시키거나 ‘타인에 의해 가지게 된’ 남의 잘못, 혹은 ‘자기 자신의 동정화’를 통한 자기위로 일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것은 내 탓이 아니니 괜찮다고.


사실 이것은 누군가의 탓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는 모두 ‘여유’의 부재에서 나오는 것 같다.


나는 예민한 성격이라 기분도 수시로 바뀌곤 했다. 완벽주의 성향도 강해서 나 자신을 괴롭혔다. 주로 타인에게는 기준이 너그러웠고 자신에게는 엄격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 이유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점점 나는 그런 내 모습들이 불편해졌다. 그리고 새로 찾은 혹은 돌아온 내 모습은 바로 ‘여유’가 있는 사람이었다.


여유를 가지고 행동하라던가 여유를 가지고 생각하라는 말이 그냥 느리고 편하게 생각하라는 말인 줄 알았다. 혹은 체념이나 포기와도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더 하기 싫은 것 중 하나였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내 인생에서의 ‘성장’은 여유와 함께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음의 여유는 물리적인 거리에서도 드러났다. 마음의 여유가 넓고 깊을 때는 붐비는 지하철 속의 한 뼘짜리 거리나 연인, 친구와의 거리도 불편하지 않다. 하지만 이른 아침 조금이라도 여유가 없어지면 팔을 뻗어서 닿는 거리조차도 불편해진다. 사람의 여유라는 것은 이렇게 무서운 것이었다. 한 평짜리의 마음을 가져도 한 뼘짜리의 여유밖에 없다면 나의 마음은 한 뼘짜리라는 것을 지금은 안다.




내가 알게 된 여유를 가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로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고 둘째로는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첫 번째 방법은 더 나은 내가 되는 것이다.

사람의 여유는 부족하지 않음에서 나온다. 부족한데 나는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현대 사람들에게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이라 일단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서나 취미생활, 외국어 공부나 정치 경제 공부 등의 생산적인 일을 하고 회사에서는 열심히 일하며 성과를 내보기도 하고 운동을 해서 변화된 몸도 살펴보기도 하고. 자기계발 하는데에 시간을 쓰다 보면 꽤 멋있는 사람이 되어있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점점 다른 사람의 것을 나의 것과 비교하는 것도 줄어들게 될 것이고 그 순간부터 나는 ‘현실적인 여유’를 찾게 될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사실 첫 번째 방법은 내게 꽤 쉬운 방법이었으나 두 번째 방법이 참 어려웠다. 끊임없이 바라고 더 많고 좋은 것을 바라는 탓에 무언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상이 높으면 실망이 크다고 하듯이. 내 생각만치 되지 못하면 크게 실망을 하곤 했다. 내가 세워둔 기준에 맞춰서 이뤄지지 않으면 나는 언제나 이유를 찾아 고쳐놓으리라 생각하며 그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이는 결국 나중에는 누군가가 부러워지거나 그것을 이루지 못한 나 자신에 만족하지 못하는 상황을 불러오기도 한다. 다행히도 나는 그 정도까지는 안 갔던 것 같다.


내가 가장 아끼는 사람 중 한 명이 그런 면에서 정말 성숙한 사람인데 한 번은 물어본 적이 있다. 내가 한 일에 만족하지 못하거나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왔을 때 혹은 열심히 노력한 일의 결과가 걱정될 때 어떻게 생각하면 좋겠냐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체념이나 포기의 의미보다는, ‘결과가 어찌 되었든 나는 지금 열심히 했으면 되었고 그에 따른 결과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생각하며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라는 것. 그 얘기를 듣고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내가 지금 걱정을 한다고 해서 그 일이 잘 풀리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그저 있는 그대로 최선을 다하고 그에 따른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마음의 여유가 되는 것 같다.


이 두 번째 방법은 사실 첫 번째 방법보다 삶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먼저 나는 일하는 데에 한결 마음이 쉬워졌다. 최근에 나는 꽤 높은 직급으로 승진하면서 관리자로서의 업무와 커리어 사이에서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었는데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다 보니 아주 수월해졌다. 내가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서 임한다면 사실 결과가 어떻든 간에 스스로에게 할 말이 있는 법이었으니까.

또 연애에 있어서도 많이 편해졌다. 이전에 나는 종종 애정을 확인하는 때가 많았고 대답이 실망스러울 때는 감정적으로 대응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그 사람의 반응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하는 데에 집중하다 보니 실망스러울 일도 없었다. 나는 사랑을 하니 되었고 이 사람도 나를 아껴주니 되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만나니 애정을 확인하거나 다른 커플들과의 비교 거리도 자연스레 없어졌다.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이다.




여유를 가지게 되면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진다. 일단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게 되고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게 된다. 좋든 싫든 간에. 그리고 본인의 단점에 솔직해질 수 있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한 뼘짜리의 거리도 한 평짜리의 거리도 넓게 느껴진다. 아무리 백 평짜리의 마음이라도 쓸 데 없는 무언가 그득그득 들어가 있으면 실제로 앉아 있을 수 있는 공간은 줄어든다. 한 평짜리의 마음이라도 비워내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무엇이든 받아들이고 채울 수 있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다른 사람보다 내가 중요하게 된다.

내가 중요하면 생각이 쉬워진다.


한 뼘의 거리에 쪼잔 해지는 사람이 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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