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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치스러운글 Feb 19. 2020

책의 추천

책을 추천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책을 추천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취향이란 것에 깊이 들어가는 일일수록, 취미가 뚜렷한 사람일수록 더더욱 그렇다. 읽지 않은 책을 제목이나 작가명 같은 두서만 보고 추천하는 것은 더더욱 그렇다. 나는 믿고 읽는 작가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향수를 타인에게 선물하지 않고 받고 싶지 않은 이유와 같다.


얼마 전 그를 만나러 가는 길 조금 늦은 때, 서점에서 기다리고 있겠다는 그의 말에 책을 한 권 추천했다. 내가 누군가를 기다릴 때에 서점에서 좋은 책을 우연히 발견했던 기억을 떠올린 것이었다. 책을 추천하면서도 사실은 조금 떨리었다. 지금 그가 있는 세계에서는 이 책이 어떻게 읽힐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최근 단편으로 구성된 공상소설을 읽었다는 그에게 장편이라는 단어가 부담스럽지는 않았으려나. 서둘러 지하철역을 나왔다. 서점에 들어가자마자 그를 발견했다. 꽤 밝은 모습으로 내가 추천한 책을 구입해오고 있는 모습이었다. 안심이었다.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그에게 완독까지 끝없는 박수를!


책을 추천함에는 많은 기다림이 들어있다. 그는 나를 기다리는 시간이었지만 그동안 다른 세계를 엿보았을 것이다. 길게 늘어지는 장편소설의 소제목들과 끊을 수 없어 구매할 수밖에 없게 만든 소설의 호흡까지. 나는 분주히 걸어가는 시간이었지만 나 또한 그에게 한 권의 책을 추천하기까지 기다림의 시간을 가지었다. 책 한 권을 다 읽고 한 번을 더 읽어서 누군가에게 추천해줌에 아깝지 않을 때까지. 이것이 내가 요즘 가장 재밌게 읽은 책이라고 소개함에 앞서서 망설이지 않을 때까지. 책의 추천은 나의 시간을 추천함과 다름이 없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주위의 사람들에게 책 추천을 꽤 쉽게 하게 되었다. 나의 독서취향이 아닌 독서 시간을 추천한다고 생각하니 가벼워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추천을 받은 이들 모두가 그것을 읽거나 가지지는 못하였고 그중 몇몇 만이 나와 같은 책을 읽게 되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벅차오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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