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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치스러운글 Feb 16. 2020

눈이 내린다.

 -이번 겨울 눈을 보지 못한 것 같아!


라는 대화를 나눈 바로 그 날이었다. 차가운 겨울에 아쉬움을 담은 내 말을 듣기라도 한 듯이 그 날 낮에는 펑펑 눈이 내렸다. 버스 창문 밖으로 흩날리는 눈발들이 모두 눈을 가지고 있다면, 지나가며 나를 쳐다보는 듯했다. 그 눈은 셀 수 없이, 눈을 마주칠 새도 없이 많아졌고 건물을 나올 때 즈음에는 어느새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큰 덩어리의 눈이 날릴 때에면 마치 내게 약속을 지켰다는 듯이 눈짓을 하는 듯했다.


눈을 감았다. 바람도 적당하고 눈이 내려앉는 느낌이 좋았다. 함께 있는 사람과 가로등에 비친 눈바람을 바라보았다. 왠지 모르게 자신감이 가득 찼다. 선택에 확신이 들었고 망설임이 없었다. 무언가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이번 해에는 유난히 따스한 겨울이라 추위에 떨지 않아도 된다며 좋아했었지만 사실은 손이 시려워도 붕어빵을 들고 호호 불며 시린 손으로 입안을 뜨겁게 달구는 그 겨울이 그리웠다. 눈을 맞으며 질척이는 신발에 곤란해보고 다음날 아침 꽁꽁 얼은 눈을 밟으며 조심조심 걸어가는 긴장감을 그리워했다. 겨울은 차가워 꺼려했지만 익숙한 추억의 부재는 차가움을 이기는 것이었다.


기분이 좋아진다. 겨울이 겨울처럼 느껴지는 것처럼 모든 것이 왠지 제자리로 돌아갈 듯한 기분이다.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다.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내가 만들어야 할 때도 있지만 이렇듯, 눈 하나가 만들어주기도 하는 것이었다. 권태로운 겨울의 클리셰가 오늘은 내게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하루를 선물했다.


발걸음이 가볍다. 곧이어 힘이 실린다.

발걸음 하나에 확신이 그리고 자신감이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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