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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치스러운글 Feb 15. 2020

낭만적 햇볕

자율 출퇴근제 회사를 출근하면서 일찍 퇴근하기 위해 이르게 출근하는 날이 더러 있었다. 그런 날이면 출근길에 언제나 내가 좋아하는 '은근한 햇볕'을 같은 장소에서 볼 수 있었다. 주말이나 쉬는 날에도 매일 비슷한 시간대면 거실에서 창밖을 바라볼 때 그 햇볕을 맞은편 건물 벽면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 햇볕을 바라볼 때면 나는 한없이 낭만적이 어지고 도로 위에서 헤드라이트를 발견한 사슴처럼 멍하니 햇볕을 바라보게 되었다.


이른 아침이나 해가 넘어가는 시간대의 건물 사이로 비치는 붉은 햇빛을 좋아한다. 대낮의 해가 중천에 떠올라 넓은 광야를 하얗게 만들고, 파아란 하늘을 더 선명하게 만드는 눈이 부신 햇빛보다 모두를 비추지 못해도 아무나 볼 수 없는 후미진 곳의 따스한 그 햇볕을 좋아한다.


우주의 넓고 먼 공간이라는 단어가 무색한 세월을 넘어서 서울 전체를, 전국을 아니 지구를 비추어 아스팔트 위를 벌겋게 달구고 깨끗이 닦인 창문과 물살을 반짝이게 만드는 넓은 햇빛은 눈이 부시다. 실로 아름답지만 눈이 부셔 오래 보지 못한다. 내가 감당할 수 없어 눈을 감는다. 때로는 버겁게도 느껴지고 반대로 일상적으로 느끼기도 한다. 그런 태양의 빛이 어디선가 굽이굽이 골목을 지나 적당한 곳에, 길지 않은 시간대에 하얀빛이 아닌 태양의 빛 그대로를 비추는 때. 그 어떤 것의 모양도 바꾸지 않고 있는 그곳에서 조용히 따뜻한 붉은빛을 올려놓는 광경을 발견했을 때의 기분은 낭만적이다. 버겁지도 일상적이지도 않게 특별하고 반갑다.


내가 느끼는 사람의 따뜻함이라는 것이 이런 것 아닐까. 누구나에게 친절하고 더운 사람은 언제나 눈이 부시다. 대단하고 깨끗해서 감히 실망시킬 수 없다는 생각에 버겁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하지만 조용히 적당한 때에 은근히 베풀어주는 온화함은 나를 더 따뜻하게 만든다. 내가 가끔은 실망을 줄 지라도, 그리고 나에게 매일은 보이지 않을지라도 이렇게 적당한 때에 선물처럼. 내가 그것을 지켜보지 않아도 그 아래에 있지 않아도 죄책감이나 배신감 없이 언제이고 다시 찾아올 수 있는 그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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