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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치스러운글 Aug 06. 2019

화분 밖의 식물

화분 안의 식물은 나를 화분 밖으로 꺼내주었다.

Prologue) 이 글을 읽으며 필자와 야자에 어떤 사람을 혹은 물건을, 대상을 대입해서 읽으셔도 상관없습니다.                      어쩌면 당신이 사랑했던 모든것에 대입될 수 있는 내용이니까요.




어느 날 문득 창가에 놓인 나의 테이블 야자를 보았다.


몇 주전 물 줄 때까지만 해도 눈에띄지않던 노랗고 검은 반점이 올라와있다. 언제부터였지...

할 일들을 제쳐두고 인터넷에 검색을 한다.


' 테이블 야자 잎이 노랗게 변하는 이유 '


낯선 사람들이 대답해주는 이유는 제각각이었다. 도대체 어떤 것이 내 야자의 문제라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천차만별의 이유였다. 햇빛이 너무 직접적으로 비춰졌을지도, 바람을 너무 많이 맞았을지도, 물이 너무 많았을지도 혹은 물이 너무 없었을지도. 내가 이 아이에게 잘못했던 부분이 이 중 어떤 부분이었을지 곰곰히 생각했다.

어쩌면 모두 해당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름대로 나의 식물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준 것 같았는데 그런 나의 방식이 어딘가 맞지 않았던 걸까?

식물에게 햇빛이 좋을 것 같아 베란다를 터서 아주 커진 내 방 창문 앞의 나무선반위에 올려두었다. 가끔은 강하게 빛나는 햇빛도 쬐고 창가로 부는 바람도 커튼에 따라 느껴보라고. 그랬던 나의 마음이 테이블야자에게는 조금 안좋았을지도 모른다. 나의 공간을 바꿔가면서 애정을 쏟았고, 그것이 좋을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식물은 조금 힘들었나보다.


가만히 야자를 바라보다가 침대에 걸터앉아 곰곰히 생각한다.

식물을 기를 때는 '적당한 관심'이 중요하다고 들었던 것이 머리를 스친다. 너무 많이 관심을 주지도, 너무 안주지도 않을때 비로소 식물이 잘 자란다는 말이었다. 나는 어느쪽이었을까? 과도한 관심이었을까 부족한 관심이었을까? 어쩌면 나는 과도한 관심을 주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부족한 주인이었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내 야자에게는 좋지 않았을 환경들을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마련해주었지만 야자나무 잎에 작은 검정색 반점이 생겼을 때는 정작 별일 아니겠지 없어지겠지 하고 넘어갔다. 좀 더 물을 주고 좀 더 바람을 쐬어주면 나아지겠지.


나는 이기적으로 야자를 키웠다.

무엇이 정말 필요한 것인지 생각해보지도 않고, 벌써부터 상처의 기운이 있었다는 사실도 무시하고 멋대로 잘해주었다. 그리고 변색된 야자나무의 잎을 잘라보려고 가위를 들었을 때는 이미 거의 모든 잎을 잘라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야자나무를 잘 길러보려 애쓴 것이었기에 나의 의도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야자나무와 맞지 않았을 뿐이었다.


이제야 나는 야자나무에게 어떤 환경이 좋은지 알게되었다.

조금 늦어버린 시기일지라도 조금 남은 잎이나마 잘 키워보고 싶다.

야자나무는 다시 사면 그만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왠지모르게 나는 이제 야자나무를 보면서 야자나무가 아닌 다른 것을 생각하게 될 것 같다.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에.

이제는 조금 더 깊숙히 살펴봐야겠다. 지금 그 안에 어떤 진실이 있는지, 어떤 방법이 있는지.

내 마음이 아닌 식물의 깊숙한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 나는 얼마나 더 많은 글을 읽고 찾아봐야 하는지.




Epilogue) 이 글을 다 읽으셨다면, 이 글을 읽으며 생각났던 그 무언가 혹은 그 누군가를 대입해서 한 번만 더 다시 읽어보세요. 고작 식물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읽다보면 언뜻 무언가 생각날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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