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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치스러운글 Oct 15. 2020

면허는 없는데 차는 사고 싶어

암튼 그래

때때로 나는 무의미한 것에 과정 없는 결과를 바라기도 한다.

어떤 것도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끔은 그냥 내 마음대로 척척 잘 흘러나가길 바란다.


과정 없는 결과는 없고, 노력 없는 성과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순수하게 믿던 내가

힘들이지 않고 얻는 결과에 욕심 내는 이유는 어쩌면 과정과 결과의 무의미함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


과정에 집착하는 일은 지금 이 순간을 견디기에 가장 좋은 생각이라서 일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공부를 하고 성적을 받아야 했던 그 시기에는 지금 내가 앉아있는 이 사각형 교실의 답답한 상황이 사실 인생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그저 '과정'일뿐이라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해야 했을지도. 그 과정이 사실은 어른이 되어보면 별 거 아니라는 점을 깨닫기 전까지는, 통상적인 '좋은 결과'에 타당하게 맞아떨어지는 뜻깊은 부분이어야 했을 것이다. (어른들이 보기에?)

그리고 사실 그 시절 가장 중요했던 건 과정이 아닌 '결과' 였을걸. 그리고 그 결과는 더 어른이 되었을 때 종이 조각에 그쳐버리는 때가 오기도 한다.


지금은 내가 하는 일에 결과라고 할 것이 크게 없는 듯하다.

뭔가 삭막해 보여 슬프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런 삶에 익숙해지다 보면 어떤 것보다 편한 것이 바로 이 결과 없는 삶이라는 것을 느낄 테다. 회사에서 하는 일은 어느 순간부터 그저 '노동의 연속' 이거나 '사고 싶은 것을 사기 위한 도구' 일 뿐이지 인생의 큰 결과로 다가오지 않는다. '적게 일하고 많이 벌자' 라던가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회사 화장실에서 큰일 보는 것이다.' 같은 문장들이 친구들 단톡방에 매일 올라오는 것을 보면.

일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많이 생겼고 그들은 대부분 결과에 대한 압박이 없는 평화로운 나만의 취향들이기 때문이다. 운동을 하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자기만족을 느끼는 순간정도가 내 최근의 '결과확인' 아녔으려나.


그러다 보니 과정이 꼭 있어야 할 부분에도 사소한 욕심이 생기더라.

나는 아직 면허가 없는데도 요즘 입버릇처럼 차를 사고 싶다는 말을 한다. 자차로 출근하는 친구들이나 남자친구가 약간은 부럽기도 하고? 왠지 진짜 어른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운동 후 샤워의 개운함을 느끼며 이불속에서 책을 읽는 여유에 빠진 나는 면허시험 기출문제를 펼쳐 볼 의지조차 없는 것이었다. 아침이면 지하철 아침좀비들 사이에 끼여 내 기필코 면허를 따고 만다고 생각하다가도 침대 위에서는 연필 한 번 들고 싶지 않은 것이 사람 아니겠어? 사람 마음은 이럴 때 보면 차 대시보드 위에 붙어있는 목이 달랑거리는 햇빛 인형 같단 말이야. (차 생각만 하다 보니 생각나는 게 차밖에 없다.)



이렇듯 심히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도 인생에는 별 문제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나이가 되어서야,

조금은 힘이 풀어진 삶을 살게 되었다. 지금 당장 모든 것을 포기할 것처럼 징징거리다가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함께 맛있는 것을 먹으면 '그래 나는 정말 행복해'라고 생각하며 인생 정말 살만하다고 생각하는 것.

그러니 너무 결과에 집착하지 마, 그리고 터무니없이 좋은 무조건적 결과를 입버릇처럼 말해보자.

C'est la 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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