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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주연 Apr 06. 2022

흐르는 물

창극 《리어》

《엔젤스 인 아메리카》 전에 보려고 했던 공연 하나가 더 취소되었다.

국립창극단의 《리어》로, 이번에는 출연배우가 코로나 확진을 받은 것이다.

국악이나 창극을 좋아하기도 하고(거기다 한승석, 정재일의 콜라보라니)

작년에 본 무용극 《제7의 인간》의 정영두 연출, 배삼식 극본이라 이건 무조건 봐야 한다 싶었다.

취소된 일주일을 제외한 나머지 날짜의 공연은 다 매진이라 허탈해 있던 차

다행히 추가 공연이 열려 마지막 날 보러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안 봤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뻔했다.


셰익스피어의 극을 창극으로 각색한 만큼

서양식 이름과 복장을 한 배우들이 우리 말과 소리로 된 대사를 하는데 그 모습에 전혀 이질감이 없었다.


상선(上善)은 약수(若水)일러니 만물(萬物)을 이(利)로이 하되 다투지 아니하고 모두가 저어하난 낮은 곳에 처(處)하노라.


동양이나 서양이나 감정의 원형은 같기 때문일까.


무대에 물을 이용한 것도 흥미로웠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단순한 무대 구조였지만

인물들의 감정이 첨벙대는 물과 함께 잘 나타났다.

리어왕이 자신에게 아첨하지 않는 코델리아에게 분개해 물을 가로질러 가는 모습이나, 비오는 날 나머지 두 딸에게서 쫓겨나 혼자가 되어 성벽 밖을 헤매는 모습이나, 그런 왕을 옹호하던 글로스터 백작이 눈이 뽑히고 절규하는 모습이 특히 강렬했다.


그럼에도 왜 물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돌이킬 수 없는 세월을 나타내고 싶었던 것 아닐까 싶다.

물은 고여있지 않고 항상 흐른다.

그리고 그 흐름은 위에서 아래일 수밖에 없다.

세대의 교체는 자연스러운 것인데 권력과 과거의 영광을 손에서 놓지 않으려 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물이라는 장치에 잘 녹아들었다.


물은 또한 그것을 들여다보는 사람의 상을 반사해 비춘다.

나르시시즘에 빠지는 자도 있을 테고, 반추를 할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딸들에게 양위를 하고 난 후 더 이상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된 리어왕은

"내가 누구인가?"라고 묻는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탐구를 위한 질문이 아니라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자조하기 위함이다.

극의 제목이 원작의 제목에서 왕을 뺀 《리어》라는 점이 의미심장했다.


과거나 지위에 집착하지 말고 물과 같이 살 수 있다면... "상선(上善)은 약수(若水)일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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