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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주연 May 27. 2022

디아스포라영화제③ 연극 《디아스포라 기행》

디아스포라영화제에는 영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연극 《디아스포라 기행》도 그중 하나였다.

연극 관람과 함께 원작인 서경식의 책 『디아스포라 기행』을 읽었다.

제목에 기행이 있지만 일반적인 여행기가 아니다.


책에는 재일조선인으로서 여행의 곤란함을 겪었던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자국에 남아있는 조선인에게 국적을 주지 않았다.

이어진 혼란 속에서, 그리고 떠나오기 전에는 한 나라였으나 남과 북 둘로 나뉜 조국 중 어느 한 곳을 택해야 한다는 아이러니 속에서 많은 이들이 무국적자로 살아오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결국 한국 국적을 택하긴 하지만

자신이 태어나 자란, 따라서 삶의 모든 기반이 있는 일본에서 "특별영주자" 자격으로 살아가고 있다.

어딜 가든 낙인 같은 외국인 등록증을 소유해야 하고, 재입국 허가증이 유효할 때에만 출국할 수 있다는 제약 속에서.

그리고 해외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일본도 한국도 자신을 보호해 주지 않을 거라는 불안 속에서.


이런 뿌리 없음 = 세상에 매어주는 끈 없음은

타국의 호텔에 있는 저자를 자살의 유혹에 시달리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자가 유럽의 각국을 여행하며 만난

디아스포라 예술가들의 작품, 지식인들의 사상은 계속해서 나아갈 힘을 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디아스포라가 근대 이후 인간의 존재형식이라고 말한다.

근대가 국민국가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면

근대 이후는 국경 또는 혈통, 문화의 연속성이라는 허구를 뛰어넘은 트랜스내셔널한 삶의 방식이 보편화할 것이라는 뜻일 테다.

그리고 그게 여행과 짧은 유학 경험밖에 없는 내가 어릴 때부터 디아스포라에 매료되었던 이유일 것이다.

획일화된 내부가 아니라 바깥을 상상하게 만드는.


이어지는 서사가 있는 책이 아니라 어떻게 연극으로 만들까 궁금했는데

여러 에피소드들이 모여 모어-모국어, 국가, 가족 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한 배우가 서경식이 쓴 글의 화자 역을 맡아 읊으면,

나머지 배우들이 미니멀한 무대 장치로 그 에피소드를 비주얼화 해 보인다.

책에서 토씨 하나 바꾸지 않은 대사인데도 연극적인 힘이 나는 게 신기했다.


디아스포라영화제는 4년 전에 처음 가고, 이번이 두 번째인데

그때도 서경식 선생님을 뵈었다.

영화 《박열》 상영 뒤에 GV 행사가 있었던 것이다.

조선족 출신으로 디아스포라 문학을 연구하는 대학원 동문과 함께 가 선생님께 자기소개를 하고 함께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있다.

그보다 3년 전에는 책 『시의 힘』 출간기념회에서 사인을 받기도 했다.



코로나 기간 동안 외국인 입국을 매우 제한했던 일본을 생각하면

아마 이번 영화제는 서경식 선생님이 아주 오랜만에  여행일 것 같다.

이번 여행은 어떤 사유를 불러일으켰을지, 어떤 글을 쓰게 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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