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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타 Nov 02. 2023

연서

내 평생의 롤모델일 그녀에게

이건 확실히 하고 싶어요. 당신이 한국에 돌아오길 바라는 건 아닙니다. 나와는 달리 한국에서의 삶도 꽤나 좋아하는 당신이지만 동시에 나와 비슷하게 다른 나라로 떠나면 한국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자유가 느껴진다며 참고 있던 숨을 터뜨리듯이 쉬곤 하잖아요. 그런 당신을 알기 때문에 차라리 돌아오지 말라고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나는 항상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해가 어스름히 뜬 시간에 당신과 나의 집 사이에 있는 텅 빈 공원 벤치에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 하나 남은 담배를 나눠피우며 시시덕대던 우리가 그립습니다. 먼저 일이 끝난 사람이 상대방을 기다려 함께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 그립습니다. 사장님의 전 연인에 관한 이야기를 모조리 들어버릴 정도로 친해졌던 카페에 가던 게 그립습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추위에 손과 발이 곱는 게 느껴져도 멎지 않던 우리의 대화가 가장 그립습니다. 삶, 내면, 사랑, 우정, 행복, 자유에 대해 잠깐의 빈틈도 없이 주고받았던 그 대화가요. 그때 나열된 모든 단어들은 여전히 나를 가득 채워주고 있습니다. 당신은 항상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사람이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당신과 마지막으로 연락을 나눈지도 벌써 몇 개월이 지났습니다. 우리는 연락을 자주 하는 사이라고 하기에는 고개가 갸우뚱 기울어집니다. 만약 내가 당신이 생각나는 모든 순간에 연락을 했다면 고개는 자연스레 끄덕이게 되겠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귀찮다거나 생각이 나지 않아서는 아니었습니다. 나는 오히려 당신이 안다면 놀랄 만큼 셀 수 없이 많은 순간 당신을 생각했습니다. 그저 당신이 전자기기에 연연하지 않고 현재의 삶을 충실하게 즐기는 사람인 걸 알기에 당신을 아는 만큼 존중하고 당신을 존중하는 만큼 받아들였습니다.


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나누는 연락에 꽤나 많은 의미를 부여하곤 하지만 당신과의 관계에서만큼은 예외였습니다. 내가 당신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서가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겠지요? 나는 그저 당신을 좋아했고 그러다 보니 결국에는 당신이라는 존재 자체까지 사랑하게 된 것뿐. 당신이 전자기기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이라 연락이 쉽게 닿지 않아도, 먼저 연락을 하는 경우가 적어도 나는 그 행동의 주체가 당신이라는 것 하나만으로 조금의 서운함도 느끼지 않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 중에 당신만은 예외입니다. 존재를 사랑하게 되면 어떤 방식으로 그 존재가 발현하든 나의 마음에는 아무런 변화를 줄 수 없다는 걸 나는 당신으로 인해 배웠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당신에게도 내가 약간은 그런 존재라는 걸 말해준 적이 있었지요? 언제나 화려하고 멋진 사람이라고 하면서도 결국에는 아무것도 아닐 때의 나를 가장 좋아한다는 당신의 말이 나는 가장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당신 앞에서만큼은 불안해하며 타인에게 비치길 바라는 모습으로 연기를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제 나는 당신을 생각하면 언제 어디서나 내 본연의 모습을 마음 놓고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꾸며내지 않은 그런 나도 응원해 주는 당신이 어딘가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요.


며칠 전 잠에 들려는 순간 갑작스레 당신에게 내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편지를 쓰고 싶다는 마음이 퐁퐁 샘솟았습니다. 그걸 그대로 간단한 안부 인사에 담아보내면 펑 터질까 걱정돼 나의 이 빼곡한 마음을 이런 식으로 아무렇게나 늘어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신에게 가진 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만 결국 당신을 생각하면 사랑만이 전부인 것 같습니다.


정확히 지금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연락이 따로 없다고 해도 당신은 어디에서든 당신 그 본연의 모습으로 잘 지낼 거라는 걸 강렬하게 믿고 있기에 걱정보다는 언젠가 내게 전해줄 즐거운 이야기들을 기대하게 됩니다. 그곳이 어디가 되었든  당신이 있는 그곳에서 당신의 젊음과 자유를 풍족하게 누리다 우리 다시 만나요. 그날이 오면 나는 언제나와 같이 당신에게 나의 모든 시간과 물질들을 당신에게 기꺼이 내주겠습니다.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 어린 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참 긴 시간을 함께 통과해왔습니다. 앞으로 더 긴 시간을 우리는 함께 나아가게 될 거라는 걸 의심 없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고맙습니다.




그리고 감히 단언하겠습니다.

내 생의 마지막 날, 나의 친구들 중 단 한 명만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조금의 주저도 없이 당신을 만날 거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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