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네안데르탈인(1) : 지브롤터

사라져 가는 기억들에 대한 기록

by 김주영

나는 돌 사이를 기어들어가 이 동굴에 다시 숨었다.

지브롤터의 끝, 바닷물이 절벽을 때리는 소리만이 동굴속으로 빨려들어왔다.

바위 틈은 습하고 어둡고 차갑지만, 익숙하다.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는 북쪽에서부터 바닷가를 따라 떠밀려왔다.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이들이 불을 들고 나타났다. 우리보다 좀 작고 갸냘픈 그들은 더 많이 무리지어 다녔고 서로가 서로를 피하려 했다. 그러나 사냥터는 점점 줄어들었고, 아이들이 사라졌다.


형과 누이, 그리고 사냥을 좋아하던 아빠는 내 앞에서 하나씩 무너졌다. 긴 세월동안 우리는 계속 밀려 여기 이 동굴에 도착할 때는 삼촌과 나 둘 뿐이었다.


삼촌은 위대한 전사였다. 나보다 훨씬 강했고, 빠르고, 웃음소리가 컸다. 하지만 지난 겨울, 그는 이 절벽 동굴에서 발을 심하게 다쳤고, 며칠을 앓다가 결국 그 봄에 절벽에서 몸을 던졌다. 나는 꽃가루와 함께 그를 묻었고, 땅에 울타리를 그렸다. 그리고 혼자가 되었다.


나는 매일 같이 동굴의 벽에 그림을 그렸다. 짐승의 뿔, 달의 모양, 아이의 손바닥. 색은 검고, 붉고, 누르다. 나도 왜 그리는지는 모르겠다. 기억하려는 것인지, 나를 잊지 말라는 것인지. 혹은 내가 그리는 것들이 다시 나타나 주기를 원하는 건지.


나는 밤하늘을 쳐다보는 것이 좋다.

저 멀리 빛나는 것들은 무엇일까?
그 빛들은 죽은 가족들이 머무는 곳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홀로 남은 어느 밤에,
나는 내가 광활한 어둠 속 점 하나에 불과하다는 걸 느끼기도 했다.
내 작은 몸뚱이가 커다란 하늘 아래에서 얼마나 외로운지를 느꼈다.

'아이'도 저 별을 보고 있을까?
나를 떠나간 사람, 다시 보고 싶은 '아이'.
어쩌면 저 별들이 '아이'와 나의 감정을 이어주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별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하늘은 때때로 달라졌지만 나는 여기에 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별도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남긴 그림처럼.
나는, 아무도 몰라준다 하더라도, 하늘만은 나를 기억해 줄 거라 믿고 싶다.


'아이'를 처음 만난 건, 이곳에 온 지 두 해가 넘었을 때였다. 그녀는 굉장히 궁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고, 처음 맡는 좋은 냄새를 풍겼고, 말이 빠르고, 눈빛이 낯설었다. 우리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숨소리로 감정을 읽었고, 그녀는 내 눈동자에서 마음을 보려 했다. 우리는 얼마동안 같이 있었고, 언어는 없었지만 감정은 머물렀다. 어느날 그녀는 아주 먼 곳으로 떠났다.


그리고 오늘, 어린 소녀를 데리고 그녀가 나를 찾아왔다. 소녀도 처음 보는 나를 '아이'처럼 굉장히 궁금한 듯 오래 쳐다 보았다. 그러나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작은 손으로 내 그림을 따라 그리기도 했다. 나는 아주 오래간만에 웃었다.


얼마 뒤 그녀의 뒤를 쫓아온 다른 신인류 무리가 있었다.

그들은 활과 창을 든 자들. '아이'의 부족을 몰아낸 자들.


나는 '아이'와 소녀를 바다가 감싸주는 은신처 바위 틈에 숨겼다. 나는 창을 다시 쥐었고, 불을 들었다. 많이 쇠약했지만, 언제나 그래왔듯이 싸울 수 있었다. 나는 추격해온 신인류 두 사람과 해안가 절벽에서 맞서 싸웠다. 두 번의 화살에 맞은 나는 결국 그들을 끌어 안고 움켜 잡은 채 절벽에서 같이 떨어졌다.

얼마 뒤 내가 눈을 떴을 때 '아이'와 소녀는 나를 끌어안고 울고 있었다. 나는 표현할 수 없는 편안한 감정을 느꼈다.

얼마 뒤 '아이'의 부족이 돌아왔고, 내가 누워 있는 이 자리에 다가와 눈물을 흘려 주었다. 하지만 멀찌기 떨어졌다. '아이'가 나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조용히 말했다. 나는 대부분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 눈빛은 오래 전 내가 그렸던 벽화와 닮아 있었다. 부드럽고, 따뜻하고, 사라져가는 것.


이해할 수는 없지만 나는 무대를 떠나야 한다. 새로운 사람들이 이 세상을 이어갈 것이다. 그들이 나를 기억하지 않아도 좋다. 나를 아주 약간 닮은 그 소녀가 언젠가 아주 잠깐만이라도 나를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어쨌든 오늘,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한 거 같다.

세상에는 새로운 막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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