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네안데르탈인(2) : 샤르다르의 노인

사라져 가는 기록들에 대한 기록

by 김주영

그보다 훨씬 오래전, 어느 추운 겨울이었다.

한 노인이 불 옆에 앉아, 잠들지 못한 채 눈을 떴다.

바다를 본 적은 없지만, 가끔 파도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중동의 샤니다르 동굴 입구에는 한 무리의 네안데르탈인이 움츠리고 앉아 있었다. 사냥은 부진했고, 수컷 둘이 돌아오지 않았다. 먹을 것은 줄었고, 눈은 멈출 기미가 없다.

노인은 몸을 웅크린 채, 입김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우리의 불은, 오래 버티진 못할 거야."

그 불은 실제로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골짜기 너머에는, 간혹 다른 불빛이 보였다. 낯선 무리. 낯선 불.

때로는 친절한, 그러다가 늑대처럼 흉폭해지는 신인류들이다.


노인은 기억했다. 늙은 사람들로부터 들었다. 아주 오래전에도 그들은 왔었다. 더 말랐고, 더 빠르며, 무기를 멀리서 던질 줄 알았다. 사슴이 줄면 그들이 나타났고, 그들이 사라지면 짐승도 함께 줄어들었다.

그들과의 첫 만남은 충돌이었다. 다음은 도망이었고, 그 다음은… 서로 피하는 방식이었다. 언젠가부터, 그들은 여기저기 나타났다가 사라졌고, 마치 계절처럼 다가왔다가 흩어졌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그들은 더 오래 머물고 있었고, 그들 곁에 붙어 있는 젊은이들이 생겨났다.


신인류와 우리들은 처음에 적대적이었다. 그러다가 두 무리는 서로를 피했다. 그러나 겨울이 깊으면, 사슴은 멀어지고 불은 우리를 가까이 묶었다.

서로 말을 나누지 못했지만 눈빛은 거짓말하지 않았다.

신인류 무리의 여인이 어린아이에게 나무 껍질에 싸인 고기를 건넸을 때, 누군가는 그것을 혐오스러워 했고 또 누군가는 친절이라 믿었다.

그렇게 몇 세대, 새로운 사람들과 싸우지도 않았고, 가까워지지도 않은 채 불안한 동거는 이어졌다. 돌무기 하나 거리 두고, 짐승의 길목을 나눠 쓰는 방식으로 말이다.


우리 공동체는 약했다. 하지만 그 약함 속엔 의무가 있었다. 상처 입은 자를 돌보고, 늙은 자를 업어 옮기고, 죽은 자를 버리지 않는 것. 꽃을 덮고, 노래 없는 장례를 치렀다. 눈물을 보이지 않는 대신, 도구를 함께 묻었다. 그리고 불 앞에서 옛이야기를 반복했다. 그것이 우리의 노래였고, 예술이었다.

동굴 벽엔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지만 우리의 기억은 말없이 이어졌다.

하지만 새로운 사람들의 무리는 빠르고 강했다. 그러나 그들도 아파 했다.


늦겨울 밤, 노인은 한 젊은이를 불렀다. 신인류 무리 쪽으로 가려는 그들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내가 본 것을 네가 보지 못한다면, 그건 네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네가 들으려 하지 않는다면, 그건 너의 잘못이다."

젊은이는 눈을 피하며 대답했다.

"우리는 굶고 있어요. 그들은 먹을 걸 나눠줘요.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고, 많고, 따뜻해요."

"당신들이 지켜온 것은… 우릴 여기까지밖에 데려오지 못했어요."

노인은 조용히 말했다.

"그래… 맞다. 우리는 너희를 끝까지 데려갈 힘이 없다."

잠시 뒤,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너는 우리를 잊을 거다. 그러면, 지금까지의 우리의 흔적은 무엇이지."


그날 밤, 불은 오래 탔다. 그 아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노인은 그 아이의 이름을 부르지 않기로 했다.

이름은 기억이다. 기억은 우리 것이니까.

"그들과 어울리면, 우리는 우리를 잃는다."

그는 그 말을 하지 못했다. 너무 늦은 나이였고, 젊은이들은 이미 불빛에 끌려 있었다.

그는 벽을 긁으며 생각했다.

‘공존’은 서로의 공간을 인정할 때 이루어진다.

그러나 우리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점점 사라졌고, 그들은 남았다.


샤니다르 동굴에는 봄이 오고 있었다. 그러나 공동체는 더 작아졌다. 노인은 마지막으로 불 앞에 앉아, 손가락으로 흙을 긁으며 무언가를 남겼다.

아무도 그 글을 읽지 못했지만, 그건 누군가를 위한 기억이었다.

그는 눈을 감으며 마지막으로 속삭였다.

"나는 네 이름을 기억한다.

나는 우리를 기억한다.

그리고 나는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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