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 (1) : 대공황

가난한 사람들은 그 힘든 세월을 어떻게 견뎌 냈을까?

by 김주영

대공황이 한참 지난, 1938년 어느 조용한 오후.

뉴욕 외곽의 낡은 헬스케어 건물, 구석진 사무실 한쪽 벽엔 빛 바랜 흑백사진들이 빼곡히 걸려 있었다. 이 도시에서 시장을 2번 역임한 조이의 사무실이다.

PM 신문사의 신참내기 기자 알렉스는 수 없이 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사진이 작은 액자에 담겨있는 벽 앞에 멈췄다.

“이 사람들… 누굽니까?”

그 물음에, 오랜 세월 동안 그 사람들을 만나 온 노인 조이는 잠시 말없이 사진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먼 기억의 안개가 피어 올랐다.


사진 속 남자는 뺨과 눈두덩에 멍이 든 얼굴로, 항구의 나무 상자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의 헝클어진 머리엔 부두의 먼지와 땀이 뒤엉켜 있었고, 입가엔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하지만 잭은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은, 다 끝나고 난 뒤의 웃음이었다.

겨우 하루치 일당을 얻기 위해 싸우고 맞고, 마침내 살아남은 자의 웃음.

"항구의 싸움은 칼보다 주먹이 먼저였지."

시장은 중얼거리듯 말했다.

"잭은 그날 다섯 대쯤 때리고, 세 대쯤 맞았어. 그러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다음 날 출근했지. 입 돌아가면서도 말이야."

잭은 한때 링 위에서 복싱을 하던 남자였다.

그러나 체육관은 문을 닫았고, 그는 물류 창고로, 뒷골목으로 떠돌았다.

싸움은 살아남는 수단이었고, 그가 가진 몸 하나는 늘 마지막 보루였다.

어떤 날은 맞았고, 어떤 날은 때렸지만 그런 날도 마음은 나빴다.


잭의 사진으로 부터 몇 칸 떨어진 액자엔 평범한 여자 사진이 있었다.

긴 치마에 앞치마를 두르고, 작은 철제 찻주전자를 들고 아이 옆에 앉아 있었다.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그 얼굴은 설명하기 힘든 평온함이었다.

거기엔 땀이 있었고, 굳은 결심이 있었고, 말없이 흐르는 시간에 대한 체념도 있었다.

“엘렌은… 아마 이 도시에서 가장 보통이었던 사람일 거야.”

시장은 그 사진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남편은 해고됐고, 실업 수당도 끊겼지. 근데도 그녀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 물을 끓이고, 아이들의 옷을 꿰매고, 감자를 반으로 쪼개 나눠줬어.”

엘렌은 위대한 영웅이 아니었다.

그녀는 어떤 결단을 내리지도, 혁명을 하지도 않았다.

그저 매일 눈을 떴고, 가족을 살렸고, 스스로는 가장 나중에 먹었다.

그건 당시 수천 명의 이름 없는 여성들이 선택했던 길이었다.


“이 사람들 말인가요?”

알렉스가 다시 물었을 때, 시장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이 벽에 걸린 사람들 다 그래요.

누군가는 싸워서 견뎌냈고, 누군가는 아무 소리도 없이 버텨냈지.

잭도, 엘렌도, 그리고 저 수십 장의 사진 속 사람들도 다 똑같아.

이름 없이 살아서, 이름 없이 사라진 사람들이야.”

그는 손가락으로 한 장의 사진을 조심스럽게 가리켰다.

그건 엘렌이 마지막으로 사무실에 놓고 간 사진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잊지 않으려고 여기에 걸어두는 겁니다.

모두들, 그 시절을 어떻게든 살아냈으니까.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으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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