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 (2) : 한국의 산업화시대

가난한 사람들은 그 힘든 세월을 어떻게 견뎌 냈을까?

by 김주영

1976년 여름, 청계천 봉제골목.

서울의 공기는 항상 먼지와 기름 냄새가 섞여 있었고, 골목은 매일 재봉틀 소리로 깨어났다. 끼리릭, 쾅쾅. 기계는 사람보다 먼저 일어났고, 사람보다 늦게 잠들었다.

연희는 그날도 단팥빵 하나를 종이에 싸들고 공장에 들어섰다.

“좀 일찍 좀 와! 바늘 한 번 놓치면 다 다시 꿰매야 되는 거 몰라?”

사장의 고함이 익숙해질수록 귀는 점점 멍해졌다. 서울 말투는 날카롭고 바늘처럼 뾰족했다.

작은 재봉틀 앞, 하루 12시간.

목덜미는 땀으로 젖고, 허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저릿했다.

그래도 연희는 묵묵히 실을 꿰었다. 눈이 침침해지는 오후쯤이면 어김없이 배가 울었고, 그때 순자가 반찬통을 내밀었다.

“무우말랭이, 엄마가 보내주셨다.”

고향이 같은 순자 언니는 연희보다 두 살 위였다. 밤이면 옥상에 올라가 둘이 앉아 노래를 불렀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봄비’를 따라 부르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청계천은 잠들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새벽에 더 분주했다.

봉제공장 철야조 여공들이 쏟아져 나와 좁은 골목을 메웠다.

땀에 젖은 셔츠 위로 재봉틀 기름 냄새가 퍼졌고, 종이봉지에 든 식빵이나 단팥빵을 들고 계단을 내려가는 아이들은 무표정했다.

누군가는 얼굴에 화장도 못 지운 채, 누구는 아직 눈곱도 떼지 못한 채.

계란국을 파는 식당 앞엔 긴 줄이 늘어섰고, 허겁지겁 국물을 들이켜는 사람들 너머로는 또 다른 인파가 몰려들었다.

청계천 물빛은 새벽 햇살에 녹슨 철처럼 탁했고, 천 위엔 먼지 낀 천막이 무심하게 흔들렸다.

순자는 컵라면 국물을 불어 식히며 말했다.

“이 골목 사람들은 다 언제 자는 걸까.”

연희는 대답 대신 작은 목소리로 노래를 다시 불렀다.

바늘 소리 없는 옥상 위, 그때만큼은 서울도 조금 조용했다.

“언니, 우린 여기서 얼마나 더 있어야 해요?”

“몰라. 근데 여긴... 그냥 그런 데야. 다들 한 번쯤 도망치고 싶어하는 데.”

그러던 어느 날, 한 동료가 재봉틀 앞에서 고꾸라졌다. 과로였다.

연희는 무심한 사장의 얼굴을 보며 속으로 되뇌었다.

“그만두면 안 돼요?”

순자는 말했다. “갈 데가 있으면 다 그만뒀지.”

그날 밤, 연희는 잠들지 못했다.

공장 담벼락 너머로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

창문 너머, 하얀 원피스를 입은 여자아이가 건반을 두드리고 있었다.

연희는 피아노를 배워본 적도, 만져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그 멜로디를 따라 불렀다. 목소리는 작았지만, 노래는 마음속에서만큼은 자유로웠다.

며칠 후, 밀린 월급을 두고 연희는 사장과 말다툼을 벌였다.

“그깟 돈 몇 푼 때문에 뭔 말이 그리 많아? 너 말이야, 시골서 올라와선 이게 어딘 줄 알아?”

연희는 조용히 말했다. “여기가 어딘지는 몰라도, 전 이제 못 하겠어요.”

그렇게 연희는 공장을 나왔다. 수년 째 아버지가 누워 있다는 순자는 남았다.

그날 저녁, 청계천 골목은 평소처럼 시끄러웠다.

연희는 다시 그 골목을 걸었다. 익숙한 냄새, 익숙한 소음, 그리고 익숙한 건물.

그 순간, 옥상에서 누군가 ‘봄비’를 부르고 있었다. 목소리는 희미했지만 분명히 들렸다.

연희는 잠시 멈춰 섰다.

햇빛은 기울고 있었고, 바람은 따뜻했다.

손끝에는 여전히 실밥 자국이 남아 있었지만, 그녀는 조용히 다짐했다.

“나는 다시는, 바늘 앞에 앉지 않을 거야.”


앞 날이 두렵고 막막하지만 그럴수록 정신 바짝 차리자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서울 한복판, 연희는 조용히 첫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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