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난민은 타인에 의해 고향을 떠나 타국을 떠도는 강제 실향민을 말한다,
전쟁, 정치사회종교적 박해, 기후 재난과 식량 부족 등 숱하게 많은 생존의 갈등으로 인해 홈랜드를 떠난 사람들이다. 어느 곳이든 정붙이고 살면 그곳이 새로운 홈랜드이기는 하지만, 홈랜드는 사람들에게 거의 유일한 안식처이고 삶의 수단이자 그 자체로 목적이 된다. 오늘날 전세계 인구의 1% 정도가 강제 이주민이고 그 추세는 나날이 증가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최근에는 사람간 차별과 배척이 심해져 새로운 형태의 난민이 생기고 있다.
조금 더 나은 미래를 쫓아서 미국으로 향하던 발걸음이 되돌아가고 있다.
엘살바도르, 베네수엘라, 온두라스, 과테말라.
마약 카르텔의 총구와 무기력한 정부, 절망적인 빈곤과 죽음이 일상인 나라들. 거기서부터 달려온 사람들이었다.
생존을 위해, 단지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밤에 안심하고 잠들기 위해 국경을 넘은 자들이었다.
그들이 찾아간 미국은 오랜 세월 그들에게 빛이자 유일한 문이었지만, 이제는 거대하고 차가운 철문이 되었다.
국경은 폐쇄되었고, 난민 지위는 점점 까다로워졌으며, 체류의 기회는 줄어들었다.
가짜 비자, 고용 사기, 국경 검문소의 감시망.
트럼프 행정부 이후 미국의 남쪽 국경은 점점 더 철저하고, 더 무자비하게 닫혔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다시 걸음을 돌린다.
역주행 이민.
거꾸로 돌아가는 희망의 행렬.
그 여정은 더욱 위험하고 고통스럽다.
파나마와 콜롬비아 사이, 밀림과 늪이 뒤엉킨 지옥 같은 구간, 다리엔 갭(Darién Gap)을 넘는다.
그곳은 ‘길’이 아니라 ‘생존 시험장’이다.
산소 없는 습지에서 목숨을 잃는 아이, 길을 잃은 노인, 강을 건너다 떠내려간 형제의 시신.
길에는 바람도, 나무도 있지만, 그 누구도 이름을 묻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다시 바다로 나선다.
쿠바 해역과 카리브 섬들을 지나, 남미의 해안으로 향하는 조그만 FRP 보트.
조그마한 모터를 하나 단 그 보트에는 최소한 20명 이상이 비닐로 몸을 가린 채 몸을 포개어 탄다.
구명보트는 외국 기자들이 사진을 찍는 날이나, 운이 좋다면 착용한다.
약간의 속력에도 파도는 넘고, 차가운 물은 온몸을 적신다. 모터는 언제 고장날지 모를 일이다.
그 안에 한 아이가 있었다.
엄마 품에 꼭 안긴 채, 밤의 파도를 자장가처럼 듣고 있었다.
그에게 국경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비자가 없다는 것도, 추방됐다는 것도 몰랐다.
그에게 전부였던 것은 단 하나, 작고 따뜻한 젊은 어머니의 품 안이었다.
언제쯤 그는 자신이 ‘불법’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까.
그를 그렇게 만든 단어들이 그 어떤 잘못보다 먼저, 그의 이름보다 먼저 따라다니게 된다는 걸 언제 깨닫게 될까.
사람들은 묻는다.
“왜 그들은 그렇게까지 위험한 여정을 선택하나?”
그러나 그 여정은 선택이 아니라 내몰림이었다.
돌아갈 수도, 남을 수도 없는 곳에서, 누군가는 그냥 한 발을 옮겼을 뿐이다.
아무리 작은 보트라도, 그 안에 자리가 있다면, 그건 세상 어디보다 넓은 안식처였다.
그들은 아직 떠돌고 있다.
국경 너머도, 예전에 살았던 고향 땅도 그들을 반기지 않는다.
그들은 부유하는 사람들이다.
법과 제도, 혐오와 침묵의 사이에 놓인 부유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의 이름을 부르지 못하더라도
그들이 ‘살았던 시간’을 마음속에 새기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다시 시작일지도 모른다.
아주 작고, 아주 느리지만,
사람으로서 다시 돌아오는 첫걸음.
그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다면 좋겠다.
단지 ‘불법’이 아니라, ‘기억’의 한가운데로 부르는 사람 하나쯤은 남아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