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가는 기억들에 대한 기록
트라키아의 골짜기. 저녁 햇살이 바스락거리는 풀숲 너머로 천천히 스며들고 있었다.
멀리서 아이들의 기도 소리가 들려왔다.
낯선 라틴어 찬송가였다.
그 부드러운 음률이 귓속을 울리는 순간,
나는 오래전 잊고 싶었던 기억 한 자락이 내 안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것을 느꼈다.
“저 음률은…”
나는 도둑질하다 들킨 어린아이처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얼굴이 회끈거렸다.
아득한 과거, 우리가 유럽 일대를 내달리던 시절.
어느 평화롭던 작은 마을.
그곳을 몇 명의 훈족 병사들이 덮쳤다.
바람에 흔들리는 잔나무 가지,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저 찬송가의 멜로디.
그러나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불태웠고, 사람들을 흩어놓았다.
불길, 비명, 짓밟힌 정원.
그날 내 손에 쥐어졌던 칼과 창은 지금 농기구로 변했지만, 그 기억은 평생 나를 짓눌렀다.
그때 나는 젊고, 용맹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오늘 나는 그 사실을 부끄러워 한다.
우리의 폭력과 잔인함으로 짓밟았던 그 소박하고 소중한 평화—
그 작은 마을의 라틴어 기도 소리가 지금 이 골짜기에서 다시 울리고 있다.
아이들이 그 소리를 따라 부를 때마다, 나는 어두운 마음으로 거울 속의 과거를 마주본다.
전쟁터를 달리던 내 모습,
부서진 집들, 무너진 숨결들.
그 모든 것이 부끄럽다.
"아틸라 한 사람이 죽자, 우리도 무너졌다. 우리는 생각보다 작고 가벼운 존재들이었지."
그의 죽음은 우리를 잘게 부수어 버렸고, 여섯 병사는 살아남아 이 골짜기까지 흘러왔다.
이름도,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땅.
나는 말의 고삐를 손에 쥔 채 멈춰 섰다.
처음엔 말들이 우리 곁에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말은 쓸모 없었다.
병들어 죽거나, 팔려 나갔다.
대신 낫과 괭이를 들고 밭을 갈았다.
우리는 전사에서 농부로 변했다.
함께 온 이들 중 하나는 로마 노예 출신 여인과 가정을 이루었다.
아이들이 태어났고, 그들은 우리 말을 배우기를 꺼려 했다.
그들은 라틴어를 원했다.
내 안의 훈족 노래는 점점 사라졌다.
우리가 타던 말의 발굽 소리도, 전장의 함성도, 모두 멀어졌다.
동료들은 하나둘 떠났고, 나도 이름을 잊었다.
내게 남은 건 순종하고 체념한 아틸라의 눈빛,
우리가 달리던 초원의 냄새는 그리고 언젠가 잊힐 운명뿐이었다.
지금 이 순간, 수확감사절 기도를 부르는 아이들의 라틴어 찬송가가
내 마지막 세상을 채운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는다.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아이들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들은 더 이상 나와 닮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저 감사했다.
우리의 말은 사라졌지만, 그들의 기도가 이 골짜기에 남았음을.
나의 전사는 이제 역사의 바람 속으로 흩어졌다.
내 무덤 위에는 아무 기록도, 이름도 없이 돌 몇 개가 놓일 것이다.
그러나 바람은 오래도록 나를 기억할 것이다. 바람이 나를 낳고 키웠으니 말이다.
이제 나도 평화로워졌다.
오랜 방황 끝에, 마침내 안식할 곳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