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을 껴안는 사람들
외딴 산속, 짙은 안개가 오두막 지붕에 내려앉는다.
지붕 너머로 빛 한 줄기 들어오는 시간은 하루에도 잠깐뿐.
그 빛이 작고 거친 탁자 위를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
남자는 펜을 들고 한 줄을 적는다.
하루에 단 한 문장.
그는 그것으로 족했다.
그렇게 12년이 지났다.
세상은 그를 잊었고,
그도 세상을 놓았다.
세상은 무겁고,
말은 날카로우며,
사람은 자주 서로를 밀쳐냈다.
그래서 그는 말하지 않았다.
그날 아침은 달랐다.
낯선 발자국 소리.
마른 가지 밟는 소리.
오두막 문이 살짝 흔들렸다.
소년이었다.
낯빛이 창백하고 눈매는 어딘가 부서진 듯한 소년.
짧게 잘린 검은 머리, 다 해진 셔츠,
그리고 손에는 젖은 책 한 권.
“길을… 잘못 들었어요.”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였고,
손가락으로 오두막 한쪽, 벽난로 앞의 의자를 가리켰다.
소년은 조심스레 그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말이 없었다.
며칠이 흘렀다.
해가 뜨는 순간,
남자는 묵은 펜으로 문장 하나를 써냈다.
소년은 다가가 그 문장을 읽었다.
“고요는 언제나 말보다 앞선다.”
소년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다시 문장을 적었다.
“상처 난 마음이 가장 먼저 냄새를 맡는다.”
그것을 본 소년은 아주 작게 웃었다.
밤이면 벽난로에 불을 지피고,
말없이 함께 나무껍질을 벗기거나,
말없이 바닥을 쓸었다.
말없이 오래된 책을 꺼내 읽었다.
그러던 마지막 날 아침.
남자가 평소처럼 한 문장을 쓸 때,
소년이 불쑥 물었다.
“이 말들… 누구에게 주려고 쓰는 거예요?”
남자는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침묵이 길게 흘렀다.
오두막 안을 아침 빛이 천천히 적셨다.
그는 입을 열었다.
“너 같은 사람에게.”
소년은 고개를 숙였다.
그 뒤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며칠 후, 오두막은 다시 비어 있었다.
남자는 산을 내려왔다.
햇빛이 눈부셨고, 사람들은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한 작은 마을의 골목 끝,
조용한 책방 문을 밀고 들어갔다.
서가 구석에,
무제本 작은 노트를 조용히 올려두었다.
그 안에는 12년간의 아침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
표지도, 이름도 없었다.
그저, 조용히.
한 사람을 위한 말들로 가득 찬 책이었다.
그리고 어딘가—
소년은 다시 길을 걷고 있었다.
낡은 셔츠는 새 옷으로 바뀌었고,
손엔 책 한 권이 들려 있었다.
표지는 없지만,
그는 그 속의 문장들을
하나하나
다 외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