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을 껴안는 사람들
어떤 만남은
말을 건네지 않는다.
이름도, 얼굴도 없이
서로를 알아본다.
이 글은 그런 이야기다.
쇠를 녹이며 삶을 지탱해온 한 남자,
문장을 매만지며 고요를 살아낸 또 다른 남자.
그리고 그들의 소리를 듣고, 말 없는 말을 기억한 자들.
이 세계엔 차라투스트라도, 그루누이도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숨결은,
멈춘 공장의 피리 속에,
무제의 노트 한 줄 속에,
누군가의 발소리와 숨결 사이에
고요히 흐른다.
이제, 그 침묵을 따라
세 편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느 도시 외곽, 오래된 제철소가 문을 닫았다.
쇳소리가 멎은 지 몇 달이 흘렀고, 사람들은 모두 떠났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윤태수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이곳에서 삼십 년을 일했다.
젊었을 땐 시키는 대로 했다.
두말 않고, 고개를 숙이고, 하루 열두 시간,
쇠를 녹이고 두들기며 살았다.
“사람은 자기 일에 책임을 져야지.”
그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 말에 묶여 살았다고, 뒤늦게 그는 깨달았다.
공장이 문을 닫는 날, 이름이 적힌 정리해고 통지서를 받아들었을 때
태수는 웃지도, 울지도 않았다.
묵직한 쇳덩이를 가슴에 하나 얹은 듯, 조용히 일어났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다시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머릿속엔 자꾸 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릴 적 아들은 가끔씩 작은 손으로 그의 손가락을 꼬집으며 말했다.
“아빠, 왜 항상 공장에만 있어?”
그때마다 태수는 고개를 돌렸고, 그 질문을 외면했다.
“일이니까.”
그 대답도, 아이의 눈빛도, 이제는 가슴 한켠에 짙은 그늘이 되었다.
사람들이 모두 떠난 뒤에도 그는 매일 아침 그곳에 나왔다.
끊긴 전기, 멎은 벨트, 굳어버린 윤활유.
그는 남겨진 기계들을 닦고 조이고, 기름칠을 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도,
언젠가 다시 가동되리라는 희망 때문도 아니었다.
그냥, 그걸 하지 않으면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녹슨 작업대에 앉아 그는 무심코 쇠조각 하나를 깎기 시작했다.
각진 손가락으로 다듬고, 구부리고, 구멍을 뚫고,
그 안에 작은 피리 하나가 만들어졌다.
“아들에게 만들어주려고 했던 건데.”
그는 중얼거렸다.
아들. 그 이름을 몇 년 만에 입 밖으로 꺼낸 건지 기억나지 않았다.
어릴 적 아이는 ‘왜 아빠는 항상 공장에만 있어요?’라고 물었다.
태수는 그때도 아무 말 없이 눈을 돌렸다.
피리를 입에 대고 불자,
그 소리는 마치 오래된 땅에서 솟아나는 맑은 샘물 같았다.
녹슨 기계와 먼지 낀 공장 사이로 퍼지는 소리는
텅 빈 공간을 채우는 따스한 바람처럼 느껴졌다.
작고 연약해 보이는 음률은
마치 새싹이 땅을 뚫고 올라오는 순간처럼 생명을 불어넣었다.
아이의 눈이 반짝였고,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아저씨, 이 소리… 희망 같아요.”
태수도 미소를 지었다.
그는 오랜 시간 잊고 지냈던 마음 한 켠의 불씨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며칠 뒤였다.
공장 담벼락 너머로 작은 그림자가 하나 다가왔다.
낡은 운동화를 신은 초등학생 아이였다.
“저기요… 아저씨, 그거 뭐예요?”
아이의 눈은 그 피리에 꽂혀 있었다.
태수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새로 태어나는 소리야.”
그날 이후, 아이는 가끔 공장 담벼락에 앉아 피리 소리를 들었다.
태수는 더는 기계를 손보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쇠조각을 다듬었다.
하나는 아이에게,
하나는 아직 어디에 있는지 모를 아들에게 보내기 위해.
그가 만들고 싶은 건 이제 도구가 아니었다.
어떤 말보다 진한, 말 없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