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마라집(2) : 불타지 않는 혀

숙명을 껴안는 사람들

by 김주영

새벽의 장안은 숨을 죽이고 있었다.

창호 틈으로 스며드는 찬 기운 속에서,

구마라집은 홀로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등불은 오래 켜두어 기름이 줄었고,

먹은 천천히 갈아졌고,

붓 끝은 이미 몇 차례 단어에 걸려 멈췄다.


그는 오늘, 법화경의 한 구절 앞에서 멈춰 있었다.

‘모든 중생이 본래 부처다’

이 한 줄을 옮기는데 그의 손이 멈췄고, 입술도 따라 멈췄다.

산스크리트어로 된 그 말은,

파도처럼 반복되며 입 안에서 맴돌았지만

종이 위에 새겨지는 순간

진리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붓을 내려놓고 입을 감쌌다.

이 혀가 과연 옳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는 오래 전 한 약속을 떠올렸다.


“내가 전한 진리에 틀림이 없다면,

내가 죽은 뒤에도

이 혀는 불타지 않을 것이다.”


그 말은 믿음의 표현이자 절망 속의 기도였다.

그는 자신이 전하는 말이

이미 입에서 한 번 씹힌 밥처럼

진한 의미를 잃어버리고

다른 누군가에겐

쓰디쓴 맛이 되고 역겨울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번역을 멈출 수 없었다.

경전을 옮긴다는 건, 단지 문장을 바꾸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불의 형태를 바꾸는 일이었고, 이 세상의 고통을 한 문장에 접어 담는 일이었다.


그는 천축의 소리를 기억했다.

어린 시절 스승이 읊조리던 진언, 밤마다 사원 벽에 부딪히던 찬불가.

그 언어는 빛과 같았고, 무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한자로 옮긴 그것은 더 이상 노래가 아니었다.

그는 한 구절의 번역을 앞두고 손을 멈췄다.

‘삼매’라는 단어.

그것은 고요한 집중이었고,

불꽃 속에서 피어나는 평온이었으며,

행자의 온 존재가 가라앉는 상태였다.

하지만 한자로는 단지

‘깊은 고요’라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혀를 깨물고 중얼거렸다.

“이 말은… 번역되지 않는다.”

그 순간

그는 알았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은

진리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부재를 기록하는 일이라는 것을.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진리의 자리를 더 분명하게 남긴다는 것도.

그는 천천히 붓을 들었다.

진리는 스스로 말을 가지지 않지만,

그 빈 자리를 지켜보는 사람,

그 언어를 흉내 내는 자가 필요했다.

그는 생각했다.

“이 생은 지옥이자 도량이다.”

모순된 삶, 부끄러움, 회한, 그리고 번역의 끝에 남겨진 고요 속에서 그는 묵묵히 경전을 써내려갔다.


아침이 되었다.

하인이 다가와 불을 갈고

차를 올렸지만

구마라집은 눈을 들지 않았다.

창 밖 위수(渭水)의 물소리가 들렸다.

그는 한 번, 강 쪽을 바라보았다.

위수는 그날도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소리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나는 옮긴다.

그러나 진리는 이미 흘러갔다.”

그리고 붓을 내려놓으며

마지막으로 중얼거렸다.

"다행히 내 혀는 아직 타지 않았다.”



*.7월 7일 7시경, 초안을 예약 등록하려다 실수로 발행 후 곧 삭제를 하고 다시 예약을 했는데, 이 때 발행된 글에 라이크잇을 눌러준 언더독님에게 사과의 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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