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을 껴안는 사람들
장안의 해는 느리게 기울고 있었다.
사원의 뜰을 가로지른 햇살이 돌계단을 스치고,
황토빛 강물이 먼지처럼 반짝였다.
구마라집은 오래된 경전을 덮었다.
모래바람의 나라, 쿠차국을 떠나온 지 수십 년.
그는 이제 천자의 도시에서
삼장법사라 불리는 사람이 되었고,
수백 권의 불전을 한문으로 옮긴 사람으로 남았다.
하지만 오늘따라 손끝에 남은 글씨보다
기억의 그림자가 더 또렷하게 다가왔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키질 석굴로 향하던 어린 날이 있었다.
어린 구마라집은 붉은 사암벽에 새겨진 부처의 얼굴들을
하나씩 세며 걷곤 했다.
그 얼굴들은 언제나 고요했고,
그의 마음은 그 고요함에 들떠 있었다.
그는 어려서 일찍 출가했고,
작은 나라의 왕자들이 그를 스승이라 부르던 시절도 있었다.
산길에서 만난 낡은 가사 차림의 노승이 그에게 말했다.
"이 아이가 서른다섯이 될 때까지 계율을 지킨다면,
위대한 아라한 우바급다처럼 빛나는 법사가 될 것이고,
파계를 하더라도 뛰어난 자로 남을 것이다."
그 말은 예언이었고, 저주이기도 했다.
장안에 이르기까지, 그는 포로였고, 스승이었으며, 후량의 장군 여광의 수하에 붙잡힌 이방인이었다.
여광은 '당신들 중들이 중국의 도사들보다 나은 점이 뭐야?'라고 말하며 구마라집을 비하시키려 했다.
달리는 말에서 떨어지게 했고, 포로로 함께 끌려온 어느 왕녀와의 합방을 강요했다. 합방하지 않으면 여동생을 죽이겠다고 했다.
그는 여동생을 살리기 위해 계율을 어겼고, 그 밤 이후 파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살아남았고, 손에 붓을 들었다.
한문은 낯설었고, 진언은 입술에서 맴돌았으며, 경전은 손끝에서 조용히 형태를 바꾸어갔다.
그는 18년간 양주에 머물렀다.
401년 후진의 황제 요흥이 국사로 그를 영접했고 본격적으로 번역에 몸을 던졌다.
모두 300권을 옮겼다.
누군가는 그것을 전생의 공덕이라 했고,
누군가는 권력의 도구라 불렀다.
하지만 구마라집은 그냥,
그날그날 정결히 씻고
책상 앞에 앉아
글자를 골라내는 하루를 보냈을 뿐이었다.
그는 오늘도 위수 강가에 앉았다.
강물은 끊임없이 흘렀고, 그 물소리는 키질 석굴에서의 기도소리를 닮아 있었다.
눈을 감자 쿠차국의 바람이 불어왔다.
어머니가 주던 작은 염주알의 감촉,
모래에 흩어진 작은 발자국,
그리고 붉은 사암의 불상들.
그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진리를 옮긴다는 건 어쩌면 기억을 되살리는 일이기도 하겠지."
이름을 가진 모든 것은 사라진다.
그러나 마음속 어딘가에서,
그의 고향은 여전히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수없이 번역을 거듭한 법화경의 구절 하나가
떠오르듯 내려앉았다.
“삼계는 모두 불타는 집과 같아
이에 들어가 머무름은 고통을 받는다.”
그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지옥도 도량도 결국,
이 한 생 안에 함께 있었다.
강물 위로 저녁 바람이 일었다.
구마라집은 일어섰다.
이제는 다시 책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오늘도, 내일도 그는 진언 하나 하나를 번역할 것이다.
그 말이 제대로 옮겨졌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의 혀가 아직 타지 않았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