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상보다 먼 길을 날았다

by 김주영

나는 나비다.

정확히 말하면, 모나크 나비 4세대 17,932,558번째 후손쯤 되는 존재다.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가 날던 경로를 따라 오늘도 남쪽을 향해 날고 있다. 이유?
모른다. 그냥 유전자에 그렇게 써 있는 거 같다. 따져보면 그 나름 얄팍한 이기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그딴 건 따지고 싶지 않다.

"남쪽으로. 지금. 죽기 전에."

출발은 캐나다였다.
9월이었다. 한기 어린 바람이 나뭇잎의 엉덩이를 툭툭 치고 있었다.
“자, 날 시간이다.” 누군가 속삭였고, 나는 펄쩍 날아올랐다.
다른 나비들과도 말은 안 했지만 다들 알았다. 이건 그냥 해야 하는 일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나는 어릴 때부터 들었다.
“너는 위대하다. 우리는 ‘왕의 나비’다. Monarch란 뜻이지. 고귀하고, 존엄하고, 치열하게 짧게 산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비행중 컵라면으로 때우면서 당당히 날아간다.
속도는 20km/h. 자부심은 마하 5.

미국을 지나며 수많은 도시를 보았다.
시카고에서는 바람이 너무 세서 하루 종일 표류했고, 텍사스에서는 자동차 매연에 거의 기절할 뻔했다.
어떤 철없는 어린애가 나를 향해 소리쳤다.

“나방이다! 때려!!”
나는 침착하게 외쳤다.
“나는 나방이 아니다, 얘야! 나는 나비야! 게다가 이주민이라고!!”

날다 보니 생각이 많아졌다.
도대체 왜 나는 이러고 있는 걸까?
내가 멕시코까지 가 봐야 돌아오는 건 내 자식도 아니고, 그 자식도 아니고…
내 증손녀쯤 될 거다.
그 아이가 북쪽으로 날아가고, 그 증손녀가 다시 남쪽으로 날아올 거다.
이게 뭔가. 나는 생물학적 릴레이의 1구간에 불과하단 말인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날면 날수록 마음이 차분해진다.
아마 내 짧은 생의 목적이 뚜렷하기 때문이리라.
나는 한 뼘의 길이도 안 되는 존재지만, 내 날갯짓에는 세대를 거슬러 흐르는 의지가 실려 있다.
할머니가, 그 할머니가, 그리고 그들이 날았던 길.
나는 지금 그 길 위에 있다.

그리고 드디어, 멕시코의 산등성이에 도착했다.
마을은 온통 마리골드 꽃과 해골 가면으로 장식되어 있고,
어딘가에서 기타와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아이들이 내게 속삭인다.
“왔구나, 영혼의 나비야.”

아, 그렇다.
이곳에서는 우리를 ‘영혼’이라 부른다.
죽은 자의 기억을 타고 내려온, 조상들의 모습.
사람들은 나를 보며 손을 흔들고, 꽃길 위에 자리를 내어준다.

나는 알을 낳고, 나뭇잎 위에서 고요히 눈을 감는다.
내가 보지 못할 북쪽의 하늘, 내 딸딸딸딸딸딸딸딸딸이 다시 날아오르겠지.

그래, 나도 날았다.
나는 조상보다 먼 길을,
그리고 조상 덕에 있는 길을.

그리고, 나의 짧은 생은 딱 좋게 끝났다.
죽기 딱 하루 전날, 축제가 시작됐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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