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는 없었다

외로운 손끝들, 에이미 와인하우스

by 김주영

새벽 세 시. 런던 중심가의 한 호텔방.
방 안엔 형광등보다도 차가운 조명이 덜컥 켜져 있고, 테이블 위에는 절반쯤 비워진 보드카 병들과 값싼 초콜릿, 뚜껑도 열리지 않은 통조림 과일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에이미는 바닥에 앉아 있다. 무대에서 입었던 검은색 미니 드레스는 아직 그대로였고, 입술엔 색이 거의 사라졌으며, 눈가는 번진 마스카라 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다.
그녀는 손끝으로 술잔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사람들 온다 했잖아. 분명히.”

방 안에는 네댓 명의 '사람'이 있었다.
누군가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누워서 이어폰을 꽂고 무표정한 얼굴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말은 있었지만, 누구도 이 방에 진심으로 존재하지는 않았다.
그들에겐 이 방은 단지 지나가는 장소일 뿐이었고, 에이미는 이곳의 주인이었지만, 동시에 투명한 유령이었다.

그녀는 무대 쪽을 언급하며 말했다.

“오늘 나 좀 괜찮았지 않아? 앞줄에 앉은 남자랑 눈 맞췄어. 두 번째 곡에서.”

누구 하나 대답이 없다가, 술에 절은 목소리로 누군가 말했다.

“다 잘했다고 하더라. 네 이름이잖아. 뭐든 괜찮아 보여.”

그 말은 칭찬이 아니었다.
에이미는 그걸 알아차렸지만, 애써 웃었다.
웃음은 입술보다 눈에 먼저 걸렸다.
그러나 웃는 눈은 없었고, 웃음은 입안에서 깨지듯 사라졌다.


그녀는 화장실에 놓인 커다란 보라색으로 장식한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그녀의 마법의 거울이다.
거울 속에 선 여자는 어깨가 내려앉고, 무대조명 아래선 몰랐던 지친 눈과 잔주름을 안고 있었다.
이 여자... 정말 내가 맞나?

“나... 사람들이 날 좋아했으면 좋겠어. 정말. 진짜로 말야. 날. 그런데 말야. 나는 매일 사랑에 빠져. 사람이 아닌 상황과”

그녀는 거울을 향해 말했지만, 누구도 듣지 않았다.

“사람들이 너 좋아하긴 하지. 음악이랑, 옷이랑, 기사거리랑... 뭐 그런 거.”

"나는 날 사랑하지 못했어. 그게 문제였고, 그래서 날 사랑해준 사람들까지 다치게 했지. 사랑받는 게 무서웠어. 사랑은... 결국 떠나는 거잖아."

에이미는 고개를 숙였다.
그 목소리는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틀리다고 말해주길 바랐던 걸까.
그녀는 또 술을 따랐다. 이번엔 손이 조금 떨렸다.
잔이 덜컹거리며 잔속의 술을 흔들었고, 몇 방울이 테이블 위에 떨어졌다.

“난 너무 많이 망가졌지. 그 남자도, 노래도, 친구도 다... 결국 나를 부서뜨리더라.”

그녀의 말에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음악도, 사람도, 공간도 모두 점점 멀어져 가는 것 같았다.

“나 진짜 이상하지 않아? 사람들이랑 같이 있으면 더 외로워. 진짜로.
나 혼자 있는 게 무서운데, 이건 더 무서워.

아이를 가지고 싶어. 그런데 이게 뭐야!”

그녀는 잔을 내려놓으려다 손에서 미끄러뜨렸고, 술은 바닥 카펫 위로 퍼졌다.
순간 모두가 조용해졌지만, 누구도 일어나 닦지 않았다.
에이미는 그 자리에 무너져 앉았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마치 조용히 터지는 유리처럼 울기 시작했다.

아무도 그녀를 말리지 않았다.
그 방에 있던 누구도.

파티는 없었다.
화장실 안 마법의 거울은 산산조각이 나 흩어졌고 오직 한 사람이 울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그날 이후 며칠을 더 살았고, 몇 곡을 더 부르며 버텼다.
사람들은 아무도 그녀에게 묻지 않았다.
“요즘은 어때?”
“지금, 괜찮니?”
그녀의 이름은 여전히 뉴스에 오르내렸지만, 그것은 무대에서의 실수, 체중 변화, 누군가와의 다툼 때문이었다.
그녀가 노래로 말하던 슬픔은 어느새 배경음악이 되었고, 사람들은 가사보다 기사에 더 익숙해졌다.

에이미는 'You Know I'm No Good'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I told you I was trouble. You know that I’m no good.”
그녀는 자신이 망가졌다고 말했지만, 정작 그 말에는 슬픔보다도 체념과 용기가 섞여 있었다.
어쩌면 그녀는 누구보다도 자신의 어둠을 잘 알고 있었고, 그걸 미화하지도, 숨기지도 않았다.

어느 날, 방은 다시 조용해졌다.
이번엔 영영.

에이미 와인하우스.

너무 많고도 독한 술이 그녀를 마셔버렸다.
그녀는 사랑을, 고통을, 술과 후회를 노래했지만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은
"괜찮아, 에이미. 넌 그냥 그 자체로도 충분해."였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을 잃어가며 우리 곁에 남았다.
그리고 영원히 노래하게 되었다.

Back to Black.
그리고, You Know I’m No Good.


에이미는 그렇게 떠났다.

하지만 오래전, 이와 닮은 고통 속에서 피아노 앞에 앉아 있던 여인이 있었다.

분노와 슬픔, 사랑과 흑인으로서의 자존을 노래하던 목소리.

니나 시몬.

이제, 그녀의 이야기로 걸어가 본다.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주요 곡들을 다음의 링크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최고의 R&B, 소울 보컬, 에이미 와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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