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손끝들, 렘브란트
그때 나는 열 다섯 살이었다.
심부름을 다니던 좁은 유대인 구역 골목 어귀, 거기엔 검게 그을린 작은 집이 있었다.
그 집은 늘 조용했고, 낮에도 어둡고, 창문은 사람 눈을 피하듯 덜컥 닫혀 있었다.
그 집에서 사는 사람은 늙은 남자였다.
등이 굽었고, 수염은 불에 그을린 듯 뻣뻣했으며, 가끔 시장에서 마주치면 손에 물감이 묻어 있었다.
마을 어른들은 그를 ‘렘브란트’라고 불렀지만, 아무도 다가가진 않았다.
“한때는 화가였고 굉장한 부자였대.”
“왕들도 그려줬다더라. 그런데 지금은 파산하고 저기 숨어 지낸다지.”
그 말들이 진짜든 아니든, 우리 또래 사이에서는 그는 이상하고 무서운 사람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자꾸 그 집 창을 보았다.
비 오는 날, 김이 서린 창문 너머로 커다란 붉은 망토가 어렴풋이 보였다.
무언가를 껴안고 있는 사람의 모습.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그 손은 창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안개 속에서 천천히 살아나는 손.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게 그림이라는 걸 느꼈다.
심부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몰래 빵 한 조각을 작은 천에 싸서 그의 문 앞에 놓았다.
다음 날, 그 천이 다시 문틈에 접혀 있었고, 안에는 마른 붓 하나가 들어 있었다.
붓 손잡이엔 작고 희미한 글씨로 ‘감사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그게 참 이상하게 따뜻하게 느껴졌다.
며칠 뒤, 그가 문을 열고 나를 보았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을 뿐인데, 그건 나를 향한 인사처럼 느껴졌다.
그날 이후 나는 가끔씩 과일이나 빵을 놓고 갔고, 그는 말없이 창문을 열거나 붓질을 계속했다.
어느 날, 그가 조용히 나를 집 안으로 들였다.
처음 들어간 그 방은 캄캄했지만 작은 창문을 통해 들어온 뿌연 빛들이 먼지를 쪼이고 있었다.
방안은 오래된 물감과 기름 냄새로 가득했다.
방 한 가운데 그림 하나가 있었다.
어두운 배경 속에서 붉은 망토를 두른 노인이, 무릎 꿇은 남자의 등을 껴안고 있었다.
그림 속에는 고단해보이는 그러나 다행스러운 듯한 표정의 할아버지가 있었고 그의 왼손은 크고 단단했다.
아빠가 나 어릴 때 무거운 짐 들던 그런 손 같았다.
굳은살이 박인 손, 마치 무거운 짐을 들던 사람이 오랜만에 누군가를 껴안듯.
그 손은 말없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돌아와 줘서 고맙다.”
오른손은 부드러웠다.
손등은 따뜻한 빛을 머금었고, 손가락은 가늘고 섬세했다.
그 손이 어머니의 손 같다고 느꼈다.
부드럽게 등을 쓸어주고, 눈물을 닦아주는 손.
“왼손과 오른손이 왜 다를까?”
나는 한참이 지나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아버지의 강함과 어머니의 용서 — 두 마음이 한 사람 안에 담겨 있었던 거다.
잘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게 이 늙은 화가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던 말이라는 걸.
무릎 꿇은 남자의 머리는 벗겨졌고, 발은 더러웠으며, 어깨는 움푹 꺼져 있었다.
그게 바로 ‘그 사람 렘브란트 자신’이라는 걸 나는 알았다.
그는 자신이 탕자이자 아버지라는 걸 이 그림에 담고 싶어 하는 거 같았다.
나는 그 그림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할아버지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은, 내게 무언가를 조용히 전하고자 하는 것 같았다.
용서, 상실, 그리고 한참만의 귀환.
돌아오는 길,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일부러 우산을 펴지 않았다.
그 손에, 마지막으로 닿고 싶어 했었나보다.
그 후로 며칠, 아니 몇 달 동안 그는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어느 날, 문 앞에 조용히 촛불이 놓였다.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그 영감이 세상을 떠났대.”
“남은 그림들은 교회에서 모조리 가져갔다더라.”
나는 어느 날 밤, 혼자 그의 집 창 앞에 섰다.
이제 사람도, 그림도 없고, 창도 굳게 닫혀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그 안에서 커다랗고 섬세한 그 손을 본다.
누군가를 껴안고, 말없이 용서하던 그 손.
그 손을 떠올리며, 나는 조용히 어른이 되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