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윤 Feb 04. 2020

2.4


처음 모노를 데리고 오던 날이 생생하다.

고양이를 키우고 싶었지만 경제적 심리적 적기가 올 때까지 기다렸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내가 누군가를 책임질 수 있나 깊어지던 고민 중에

흑백의 단조로운 무늬 속에서 무언가 날 닮은 듯한 공허한 눈빛의 아기 고양이 사진을 보고는 고민은 잠시 덮어둔 채 나의 작은 집에 아주 작은 온기를 더하기로 했다.


당시의 나는 돌이켜보면 아주 엉망이었다.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기 매우 힘들어했고, 티브이는 잘 보지도 않으면서 큰 티브이 소리가 없이는 잠들지 못해 아침까지 그 소리는 원룸의 네 모서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맴돌았다.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뭔가 서럽기도 하고, 어쩐지 나만 남겨진 기분이 들어서 울컥울컥 하기도 했다.


그런 모든 것들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로 작은 생명을 내 인생에 얹어보았지만, 역시나 세상만사가 그렇듯이 나 자신이 온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언가로 변화를 꾀하려 하니 더 큰 혼란을 가져오기만 했다.

작은 꼬물이가 이따금 내 품에 기대 자는 모습을 바라보거나 야옹 보다는 삐약에 가까운 소리를 내며 아장아장 걸어 다닐 때는 가슴이 설레긴 했지만 처음 몇 개월은 정말이지 힘들었다.


괜한 욕심으로 섣불리 한 묘생을 책임진다고 한 것은 아닌가. 내 감정의 파도를 이 아이가 잠재워줄 거란 기대를 벗어나 오히려 더 큰 해일을 생성하는 듯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시간은 흘렀고, 해일이 지나면 반드시 바다는 다시 안정을 찾듯이 평화는 찾아왔다.

내 인생이 바다라면 모노는 내게 이제 바다의 끝을 가득 매운 모래와도 같다.

가끔씩 요동치며 다가오는 파도 같은 내 감정도 바다의 끝에 다다르면 이내 진정되고 어떤 고민과 걱정도 잠시나마 알알이 부서진다.


작가의 이전글 2.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