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있었다.
이십 대 초반에 별로 길지 않은 시간을 만난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의 기억에 얽매여 허비한 시간이 꽤 오래였다. 유난히 힘든 시기에 만나서 그랬던 건지, 특별한 기억을 많이 만들어준 사람이라서 그랬던 건지..
술독에 빠져 허비한 시간들 속에서 내가 그리워한 것은 ‘그 사람’인 줄 알았지만, 한참이 지나서야 내가 그리워했던 건 ‘나’ 였단 걸 알았다.
그는 달콤한 사람이었지만 다정하지는 않았다. 대게 연애란 서로의 세계를 탐구하는 과정이기 마련인데, 아니었다.
내가 그 달콤한 말과 행동들 속에서 그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은 하나도 없었다. 그 시기는 오히려 내가 나에 대해 탐구하는 시기였다.
그는 나에게 새로운 세상의 풍경들을, 아름다움 들을 보여주었지만 그 기억은 ‘우리’ 보다는 ‘나’의 시점으로 남았다.
그는 그 세상에 본인을 욱여넣기보다는 가만히 내가 나로 서있을 수 있도록 지켜보았다.
아니다.
그는 그 만의 세상에 빠져있었다.
우리는 같은 곳에 서서 자기만의 세계에 도취되었던 것이다. 어쩌면 내가 그리워한 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그런 풍경들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이별의 괴로움을 끝내버리기로 한 첫걸음으로 무작정 기차를 타러 갔었다. 바다로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기차를 끊어서 타고 바다를 보면서 사과를 하나 베어 먹었다. 파도가 부서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그가 없이도 스스로 나에게 새로운 것을 보여줄 수 있다는 안도감에 눈물이 차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