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돌림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한 친구가 떠올랐다.
그 친구와는 저학년 때 꽤 친한 편이었다. 엄청난 단짝 친구는 아니었지만 가끔 집에 놀러 갈 정도로는 교류가 있는 사이였다. 그러다 귀엽고 예쁘장했던 그 친구는 고학년으로 가며 소위 잘 나가던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했고 어느새 나를 괴롭히던 아이들 사이에 자리하고 있었다.
어느 날, 다른 여느 날들처럼 수업시간보다 괴로운 쉬는 시간이 찾아왔다. 내 책상 주위로 아이들이 몰려들어 온갖 욕설을 내뱉기 시작하고 나는 잘못한 것도 없지만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아무것도 안 들리는 척 책 위에 알 수 없는 낙서들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태연한 척 대꾸를 하지 않고 있었어도 눈물이 흐르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졌던 쉬는 시간을 끝내는 종이 드디어 울리고 바닥만 바라보던 내 시야에서 발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것이 보이고, 드디어 고개를 들어 올렸다.
벌게진 내 얼굴을 보고 있던 한 아이가 남아있었는데, 어릴 적 그 친구였다. 알 수 없는 표정을 지닌 그 친구는 말없이 재빨리 내 손에 쪽지 하나를 쥐어준 채 마치 엄마 몰래 나쁜 짓을 한 아이처럼 후다닥 사라졌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 쪽지를 펼쳐보기까지는 용기가 필요했다. 그동안 내가 받은 쪽지에는 지우개 가루나 욕설 비웃음만이 가득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도 그런 것들이 적혀있을 것이라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그래도 펼쳐 든 종이에는 의외로 빽빽한 편지가 써져있었다.
미안하다고, 진심이 아니라고, 네가 잘못한 게 없고 나는 너에게 이러고 싶지 않는데 어쩔 수 없이 이러고 있는 내가 너무 미안하다고, 힘내라고, 나는 널 싫어하지 않는다고.
아이들 앞에서 편을 들어준 것도 아니었지만 그 편지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아직까지도 그 모양과 문구가 기억날 정도다. 그 친구로 인해 적어도 나는 그 시간을 견뎌내면서
내 자신을 혐오하지는 않을 수 있었다.
눈치를 보며 내 손에 급하게 쪽지를 쑤셔넣었던 그 아이는 돌아서서 손에 묻은 물기를 닦으며 어떤 마음을 가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