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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ersjoo Oct 27. 2023

139. 리을

또 하나의 개량, 한복 정장

| 2021년 3월 11일 발행

| 이 내용은 원본의 수정 및 보완 버전입니다.  



전통의 현대적 해석, 현대의 전통적 해석. 

그 상반되고 다가가기 힘든 조합을 자기만의 기준과 표현으로 완성해 내는 한복 정장 디자이너 김리을의 브랜드 ‘리을’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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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량 한복의 이해 

한복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치마 및 저고리 길이, 소매 폭 등 다양한 측면에서 변화를 겪어왔습니다. 즉 이 말은, 조선시대 후기에 민간인들이 입던 한복도 어쩌면 전통 한복이 아니라 일종의 개량 한복의 카테고리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만큼 ‘개량’이란 그 기준이 모호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개량 한복 디자이너 ‘김리을(본명 김종원)’씨는 자신만의 두 가지 기준을 먼저 세웠습니다. 바로 ‘원단’과 ‘실루엣’입니다. 그리고 한복의 원단이 가진 정통성 위에 현대 복식의 디자인을 올리는 식으로 전통 복식이 가진 의미와 현대 복식이 주는 편안함, 익숙함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습니다. 

디자이너 김리을(김종원)©rieul.kim


외국인 전통 체험의 메카인 전주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며 개량 한복 장사에 관심이 생긴 디자이너는 어느 날 한 외국인에게 왜 한복을 대여했는지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서 너희는 왜 한복을 입지 않느냐는 역질문과 함께, 원단은 좋지만 디자인이 불편하여 그렇겠구나 하는 의견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이 한 마디는 디자이너에게 아주 중요한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 한마디로 자신만의 개량 한복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성립하게 되었고, 지금의 한복정장 브랜드 ‘리을’을 시작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2. 시작은 순수하나 과정은 창대하다! 

24살. 디자인을 전공하지도 않은 무경험자. 


2016년, 청년 김종원 씨는 그렇게 디자이너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저 전주에서 개량 한복 대여점 장사가 잘 되길래 돈을 벌기 위해 뛰어든 것이죠. 하지만 현재의 그는 개량 한복으로 한국의 대표 명품 패션 브랜드를 꿈꾸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사업 시작의 계기는 우연히 만난 한 흑인 청년에게 SNS에 올라갈 사진의 모델을 부탁한 일이었습니다. 생전 가보지도 않은 공장에 찾아가 물어가며 옷을 만들긴 했는데, 룩 북이란 것이 필요하다는 사람들 말에 외국인을 모델로 섭외했고, 그 한 장의 사진이 뜻밖의 이슈가 된 것이었습니다. 한국인도 아닌 흑인 청년이 착용한 한복 정장은 한복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 주었고, 그 작은 파열은 브랜드 ‘리을’의 왕성한 활동과 영향력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수많은 협찬, 컬래버레이션 등을 진행하며 대표 개량 한복 디자이너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리을의 시작이 된 포트폴리오©rieul.kim


특히 미국의 유명 토크쇼 ‘지미 펄론 (Jimmy Fallon) 쇼’에 출연한 ‘BTS’가 경복궁 무대에서 착용한 한복 베이스의 의상은 그들의 영향력과 맞물려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된 사례입니다. 또한 신발 브랜드 ‘뉴발란스’ 광고에서 모델 한현민이 착용한 의상, 뮤지션 지코와 강다니엘이 컬래버레이션 한 ‘Refresh’ 뮤직비디오 의상, 배구 선수 김연경의 정장, 몬스타 엑스, 틴탑 등과 같은 아이돌들의 무대 의상 등도 대표적인 포트폴리오입니다. 

협찬 및 컬래버레이션©rieul.kim




3. ‘리을’ 디자인의 두 가지 특징  

‘리을’ 디자인의 가장 큰 특징은 위에서도 말한 한복의 원단과 서양의 디자인이 조화를 이룬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사진을 자세히 확대해 보기 전엔 그냥 현대의 정장으로 보이는 디자인들도 많은데요. 그만큼 ‘리을’의 디자인은 한국적인 콘셉트와 요소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요즘 사람들의 고정관념 속에 박혀있는 어색하고 촌스러운, 그래서 실제 착용하기까진 꺼려지는 1차원적 ‘개량 고전미’를 배제합니다.  ‘오방색이 들어가고, 십장생의 요소가 들어가야 한국적인 것이다’라는 단순한 해석을 경계하며, 현대적 디자인과의 거부감 없는 어울림 자체에 큰 가치를 두는 것입니다. 

리을의 디자인 포트폴리오©rieul.kim


그 반대의 조합인 경우도 있습니다. 

‘리을’의 디자인에서 흔한 조합은 아니지만 실제 구매 문의가 많이 올 정도로 인기를 끈 디자인을 예로 들어 볼게요. 바로 가죽 라이더 재킷에 한복의 저고리 고름을 변형, 적용한 디자인입니다. 즉, 아래 사진을 보아도 한복과 현대복의 요소를 억지로 살리거나 끼워 맞추려 하지 않아 독특한 해석이 성공한 작품입니다. 만약 한복이란 키워드에 너무 연연했다면 어떻게든 재킷을 한복처럼 보이도록, 또는 고름을 지나치게 현대적으로 보이도록 하는 무리를 했을 수도 있겠죠. 

©rieul.kim


이처럼 ‘리을’의 디자인은 전통과 현대 의복의 요소들에 오히려 집착하지 않는 것, 그리고 소비자가 실제 구입하고 싶게 익숙함을 유지하는 것 등에서 중요한 가치를 찾습니다.  




4. 국위선양의 진심 

하지만 이 화려한 성과 뒤에 가리어진 디자이너의 순수한 노력과 마음 또한 기억하여야 합니다. 위에 나열된 수많은 성과들 중 300벌이 넘는 의상이 무상으로 협찬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잠깐, 자본금이 많은 톱스타들과 유명 브랜드들이 왜 독립 디자이너에게 무상 협찬을 받았느냐, 일종의 갑질이 아니냐 등의 증명되지 않은 논란은 일단 덮어두겠습니다.) 그렇다면 한 벌 제작비가 최소 00만 원은 드는 의상을 300벌 협찬했을 때 그 비용만 해도 3억인데, 자신의 광고비로 충당하면서까지 무상으로 협찬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마음만큼은 진심인 국위선양을 위해서였습니다. 


디자이너는 아직까지 이렇다 할 한국 대표 명품 패션 브랜드가 없는 시점에 전통에 뿌리를 둔 자신의 한복 정장이 그 역할을 하길 바랐습니다. 물론 차라리 그 돈으로 집이나 살 걸, 내가 왜 그랬는지 후회한다는 디자이너이지만, 그 진담 반, 농담 반의 말속엔 자부심과 희망이 녹아 있는 것만은 확실해 보입니다. 




5. 팔리는 개량 한복을 위하여  

개량 한복의 성공 포인트는 전통적 요소와 현대적 요소가 얼마나 상충하지 않고 어울리는가에 달려있다 할 수 있습니다. 상반된 이미지의 두 요소가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치거나 1차원적인 ‘조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경우엔 소비자들의 머릿속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개량 한복은 촌스럽다, 그래서 일상복으로 사 입는 것까진 원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바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2020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시행한 한복 교복 시범사업 이전에도 많은 학생들의 불만과 우려가 있었습니다. 어른들의 명분과 바람을 위해 촌스럽고 어정쩡한 한복 교복을 왜 우리에게 입히려 하는가, 그러려면 선생님들도 곤룡포를 입어라! 등의 거부반응이 상당수였습니다. 하지만 막상 발표된 디자인들을 보고 착용해 본 학생들의 반응은 상당수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변화는 필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는데요. 실제 발표된 디자인들은 우려의 핵심이었던 한복 요소들을 모던한 현대적 교복 디자인 실루엣 및 요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려 독특한 매력으로 승화시켰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개량 한복은 ‘전통과 현대 요소들의 자연스러운 어울림’이 아주 중요하고, 그것은 상징적 의미를 넘어 실제 구매로 까지 이어지게 할 결정적 한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리을’의 디자인이 추구하는 이러한 방향은 기존 개량 한복들이 가진 한계를 넘어서는 좋은 본보기가 되어 디자이너의 바람처럼 한국 대표의 명품 패션 브랜드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 이런 분들께 이 뉴스레터를 강추합니다! |

+ 개량 한복의 정의가 무엇인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보고 싶은 분들 

+ 상반된 이미지의 전통적 요소와 현대적 요소의 조합을 성공적으로 이루어 내는 방법이 궁금한 분들 

+ 한국의 명품 패션 브랜드가 될 만한 사례를 알고 싶은 분들 

  

| TAG |

#김리을 #BTS한복 #개량한복 #한복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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