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eersjoo Oct 30. 2023

140. 해녀의 부엌

사라져 가는 것을 지키는 방법 

| 2021년 3월 25일 발행

| 이 내용은 원본의 수정 및 보완 버전입니다.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재로 등극한 해녀, 바로 그 해녀의 삶과 생활을 공유하는 콘텐츠를 만든 ‘해녀의 부엌’을 소개합니다. 


이제는 명맥이 끊길 위기까지 다가온 해녀 문화를 과연 어떻게 접근하여 어떻게 공유하고 있는지 읽어보세요. 


-


1. ‘해녀의 부엌’의 시작 

제주 종달리에 위치한 ‘해녀의 부엌’은 한 젊은 예술가에 의해 만들어진 국내 최초의 극장식 레스토랑입니다. 하지만 ‘공연’과 ‘음식’이라는 단 두 개의 단어로만 이곳을 설명하기엔 부족합니다. 


김하은 대표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기를 전공한 제주 출신의 예술가입니다. 고등학교 2학년, 내내 동경하던 서울로 유학을 간 후 10여 년 간 연극을 하며 치열한 시간을 보냈죠. 하지만 언젠가 다녀간 고향에서 가족들에게 해녀가 채취하는 해산물이 일본에 의해 가격 후려치기를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에 빠집니다. 증조할머니, 할머니, 고모가 모두 해녀였다는 이유에서도 계속 마음에 남는 이야기였습니다.    


대부분의 수확물이 일본 수출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빌미로 가격 후려치기를 하는 그들의 갑질에 그저 당하고만 있었던 해녀들은 결국 연극인 김하은 대표를 제주로 움직이게 했습니다. 하지만 국내의 판매 시스템은 형성되어 있지 않았고, 해녀가 채취한 해산물만 유통할 여력도 되지 않았으며, 이렇다 할 브랜딩도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대표는 많은 고민과 리서치 끝에 하나의 실마리를 잡게 되는데요. 그것은 바로 ‘공간’입니다. 

한때 활발히 거래가 이루어졌지만 지금은 문을 닫은 외딴 해변가의 활선어 위판장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야말로 해녀의 역사가 담긴 공간을 다시 살려 어촌에까지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자 기회였습니다.  

해녀의 부엌이 된 활선어 어판장©http://www.haenyeo.space/MAGAZINE




2. ‘연극’과 ‘음식’이라는 콘텐츠    

이번엔 그 공간을 채울 콘텐츠가 필요했습니다. 해녀를 주제로 하되 그것을 전할 ‘실체’와 ‘방법’을 찾아야 했죠. 대표는 자신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연극을 떠올렸습니다. 극의 형식을 통한 해녀 이야기와 그네들이 채취한 해산물들을 타당한 가격에 거래할 수 있는 기회를 더해 콘텐츠로 만든 것입니다. 해녀 단체 계장을 설득하고 종달리 어촌계의 도움을 받은 대표는 그렇게 콘텐츠와 공간을 완성해 갔습니다.    


그리고 2019년 1월 드디어 개업한 ‘해녀의 부엌’은 스승, 동기, 선후배 등의 도움을 받아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여기에, 처음엔 그저 관람객으로 방문한 청년들이 취지에 반해 고정 스태프로 합세하며 연기자, 작가, 요리사 등으로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50대 중반에서 90세에 이르는 진짜 해녀 어멍(‘어머니’를 뜻하는 제주 사투리) 여덟 명의 활동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처음부터 자신감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마임, 질문 놀이, 대화의 시간 등을 선보이는 공연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직접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난하고 거칠게 살아온 자신들의 삶을 어디 내놓기 창피하고 부끄러운 것이라 여기던 해녀들은 공감과 위로, 존경의 눈물과 박수로 함께하는 관객 및 스태프들과 공연을 하며 자존감을 높이고 있습니다.   

‘해녀의 부엌’의 공연©http://www.haenyeo.space


여기에, 해녀들이 직접 채취한 해산물들을 이용한 질 좋은 제주식 요리가 공연과 함께 제공되어 해녀들과 어촌 마을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언제부턴가 ‘해녀’라는 위기의 문화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그릇된 사례들이 많아져 눈살을 찌푸리게도 하지만, ‘해녀의 부엌’은 건강하고 신선한 음식들을 정성스레 내어주며 콘텐츠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3. 그들이 돈을 버는 법  

현재 ‘해녀의 부엌’에는 두 가지 공연 콘텐츠가 있습니다. 하나는 연극을 통해 그네들의 삶을 이야기해 주는 ‘해녀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이 뉴스레터를 받는 당일인 2021년 3월 25일에 오픈하는 ‘부엌 이야기’입니다. 


먼저 ‘해녀 이야기’는 네 명의 해녀 이야기를 연극으로 보여주는 공연과, 후기에 의하면 홈쇼핑 저리 가라 재미있고 흥미롭다는 ‘해산물 이야기’ 클래스, 해녀의 숨이 담긴 노고의 다양한 해산물로 요리한 음식을 먹는 식사 시간, 웃음은 물론 눈물 없이 버티기 어렵다는 진짜 해녀들의 이야기를 90세 최고령 해녀와 Q&A 형식으로 진행합니다. 이중 뷔페식으로 제공되는 식사는 톳밥, 전복물회, 뿔소라 꼬지, 갈치조림, 회, 군소, 우뭇가사리 무침 등으로 구성되며, 이 상차림은 해녀가 직접 채취하거나 밭에서 재배한 해산물과 채소들로 만들어진 또 하나의 킬링 포인트가 됩니다.   

‘해녀의 부엌’의 음식©https://blog.naver.com/senfds/222026876680


한편 새로 시작하는 두 번째 콘텐츠 ‘부엌 이야기’는 맵핑 기술을 이용한 영상 기반의 공연과 식사로 이루어집니다. 즉, 기존의 ‘해녀 이야기’가 해녀들이 직접 출연해 함께 이야기 나누는 아날로그 형식이라면, ‘부엌 이야기’는 영사 기술을 이용하여 바다와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입니다. 

‘부엌 이야기’©http://www.haenyeo.space


마지막으로, ‘해녀의 부엌’은 더욱 현실적인 도움과 발전을 위해 해녀가 채취한 해산물들을 프리미엄 제품으로 판매, 유통하는 모델을 구축하고자 노력 중입니다. 이미 온라인 홈페이지를 통해 제주 해녀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뿔소라, 뿔소라 젓 등을 판매했고 추후 더 다양하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합니다. 

프리미엄 제품들©http://www.haenyeo.space




4. 바다와 해녀로 완성한 디자인&브랜딩 

다양한 나이대의 해녀, 요리사, 연기자 등이 모인 ‘해녀의 부엌’ 스태프들은 ‘부어커’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브랜딩의 중요한 축 역할을 합니다. 여기에, 오래전 문 닫은 활선어 위판장의 공간은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며 그 위에 해녀와 관련된 아이템들로 꾸며져 최대한 이미지를 고수합니다. 

예를 들어 공연장의 외관은 원래의 위판장이 가진 시간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고, 실내엔 해녀의 상징인 ‘테왁’을 이용하여 장식합니다. 반면 고객이 연극과 식사를 즐기는 무대와 테이블은 모던한 디자인으로 마련하여 상징성과 편의를 모두 제공합니다.    

부어커들©http://www.haenyeo.space


‘해녀의 부엌’과 관련된 모든 브랜드 디자인 또한 전통적인 방향보단 모던한 방향으로 일관성을 갖습니다. 한국적 한글 서체와 해녀의 전통 소재인 테왁, 어망 등을 사용하되, 그것을 디스플레이하는 방법이나 이미지는 모던합니다. 이것은 사라져 가는 전통문화와 생활 방식을 새로운 세대와도 공감하며 함께 나누길 바라는 방향이고, 그것은 또다시 해녀 문화의 지속성을 기대할 수 있는 시작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 테왁 : 태왁은 해녀가 수면에서 몸을 의지 하거나 헤엄쳐 이동할 때 사용하는 부유의 도구이다. 원래는 크고 잘 익은 박속을 긁어내고 만들었지만, 1960년대 중반 가볍고 깨지지 않으며 부력이 좋은 스티로폼 태왁이 등장하여 박 태왁을 대체하였다.


실내 공간 디자인©http://www.haenyeo.space




5. 예술로 풀어가는 문제들 

해녀의 부엌이 시작되게 한 결정적인 시작은 어쩌면 뿔소라라 할 수 있습니다. 제주 해녀들이 많이 캐는 뿔소라는 현지에 많은 현무암의 구멍 사이사이에 뿔을 꽂아 거센 바닷물 속에서도 꿋꿋이 버티며 살아갑니다. 마치 해녀들의 고단하고 척박한 삶과 닮아 있습니다. 그런데 제주 해녀의 주 수입원인 뿔소라 중 80%가 일본에 수출되고 그래서 거의 독점이나 마찬가지인 그들이 정한 가격은 점차 낮게 책정되며 적정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문제가 바로 예술가 김하은 대표로 하여금 직접 공간과 콘텐츠를 만들게 한 계기입니다. 


이 스토리를 알게 된 후 몇 주 전 발행된 목포 ‘괜찮아 마을’의 청년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요즘 청년들이 어떤 문제를 해결해 가는 방법, 그리고 그를 통해 자신의 삶을 일궈가는 방법들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요즘의 예술이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과 접목되어 새로운 솔루션들을 만들어는 역할을 많이 하고 있다는 점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술 분야는 특히 더 사람의 마음과 공감을 움직이는 분야이기에, 새로운 형태의 솔루션을 많이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 연관 없어 보이는 해녀와 뿔소라라는 주제를 연극이라는 예술로서 공감을 일으키고, 그 공감은 실질적인 공연 관람, 제품 구입 등의 행위로 퍼져 나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예술로서 문제를 해결하고 그를 위해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작업들이 어쩌면 국가와 대기업에서 물량을 들이는 것보다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이런 분들께 이 뉴스레터를 강추합니다! |

+ 사라져 가는 것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알고 싶은 분들            

+ 예술과 문제가 만나 하나의 솔루션이 된 콘텐츠를 찾으시는 분들 

+ 콘텐츠가 사업의 영역을 만들고 확장시켜 가는 사례가 궁금한 분들   

  

| TAG |

#해녀 #제주해녀 #해녀콘텐츠 #극장식레스토랑 #연극의범위 #콘텐츠솔루션 

매거진의 이전글 139. 리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