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1절
♪ Roberta Flack – Feel Like Makin’ Love
소아정신과 전임의 수련을 받으면서 가장 여러 번 공부했던 수업 내용은 애착(愛着, attachment) 이론이었다. 전임의 1년 차 때 목요일 아침마다 하버드 의과대학 소속 3개 수련 프로그램 (CHA, Boston Children’s Hospital, Mass General-McLean) 소아정신과 전임의들이 한자리에 모여 소아정신과 관련 강의를 들었다. 전통적으로 멕클레인(McLean) 병원 강의실에서 다 같이 모여서 강의를 들었지만, 아쉽게도 2021-2022년에는 코로나19 때문에 원격 강의 형식에 만족해야 했다. 강의 시리즈 초반에는 소아정신과를 떠받드는 큼직한 이론들을 집중적으로 배웠다. 아동 발달 이론 및 애착 이론에 대한 수업이 여기에 포함되었다. 애착 관련 연구를 직접 이끄시는 칼렌 라이언스-루스(Karlen Lyons-Ruth) 교수님으로부터 수주 간 수업을 듣고 질문할 수 있었음을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라이언스-루스 교수님은 애착 이론의 발전을 이끈 여러 가지 실험들을 우리에게 소개해 주셨다. 가장 기억에 남는 실험 중 하나는 해리 할로우(Harry Harlow)가 레서스(Rhesus) 원숭이를 이용한 것이었다. 이 실험에서 레서스원숭이 새끼들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어미 원숭이로부터 떨어뜨려진다. 그리고 원숭이 새끼들은 어미 원숭이의 역할을 대리(surrogate)하는 장치들과 놓이게 된다. 참고로, 현대 실험 윤리 기준에 입각하면, 이러한 실험의 재현이 가능할지는 불분명하다. 이런 윤리적 비판 가능성은 잠시 접어두고 실험 내용과 임상적 중요성에 집중하도록 하겠다.
우리(cage) 한쪽에는 철사를 엮어서 어미 모양을 본떠서 만든 장치를 배치한다. 그리고 이 장치에 젖병을 달아 모유가 공급되는 상황을 연출했다. 우리의 다른 쪽에는 철사를 엮고 그 위에 천을 둘러 어미 원숭이 털 촉감을 재현했다. 대신 이쪽 대리 엄마 원숭이에는 젖병을 달지 않았다. 레서스원숭이 새끼는 어느 대리 어미를 선택했을까? 원숭이는 먹이가 공급되지 않는 천으로 감싸진 대리모에게 가서 안겼다. 하루 중 길게는 22시간을 이쪽에 있었다. 배고플 때만 철사 대리모 장치 쪽으로 가곤 했다.
레서스원숭이 새끼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본능을 따랐을 가능성이 높다. 생물학적인 행동은 보통 생존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설계되기 마련이다. 당장의 열량을 섭취하는 것보다 어머니의 몸을 연상케 하는 천 쪽에 가서 몸을 부착시켰다. 촉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안정감이 음식보다 더 중요했던 것이다. 생존을 위해서는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더 유리했다고 해석해 볼 수도 있는 행동 형태였다.
할로우의 비극적인 실험은 상황을 조금씩 바꾸면서 계속되었다. 레서스원숭이 새끼들은 무서운 자극을 마주했을 때도 천으로 만들어진 대리모에게로 달려가서 안겼다. 원숭이 새끼들은 이 천을 덧댄 대리모를 안전한 기지(Safe base)로 인지했다. 그리고 새끼 원숭이를 두 그룹으로 나눠 천을 덧댄 대리모와 철사 대리모와만 지낼 수 있도록 분리했을 때, 전자 쪽 원숭이들이 더 친사회적인 행동 패턴을 보였다. 후자 쪽 원숭이들은 더 쉽게 심리적 고통을 더 자주 표현했고, 다른 원숭이와 어울리는 걸 힘들어했으며, 스스로 사회적으로 고립시켰으며, 더 자주 사회적 괴롭힘의 피해자가 되었다.
레서스원숭이 실험은 인생 초기의 애착(Attachment) 행동의 중요성을 널리 알렸다. 어머니의 몸과 더 비슷한 촉감 자극에 몸을 부착시키는 행동은 장기적인 사회-감정적인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원숭이와 인간이 동일한 포유류임을 고려할 때 이러한 발달 패턴이 인간의 발달임을 증명하기 위한 많은 실험들이 진행되었다. 할로우의 실험만 고려한다면 애착(愛着)이라는 한자 용어가 원 용어인 Attachment의 느낌을 다소 잘못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할로우의 실험에는 사랑(애, 愛)이라는 요소가 변수로 포함되지 않았다. 촉각적인 요소만을 고려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어 용어인 Attachment theory의 더 알맞은 한글 번역은 부착 이론(附着 理論)이라고 생각한다. 타인과 물리적으로 부착하는 것이 중요함을 밝힌 것이 이론의 시초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전공의 시절 쉐퍼드 프랫(Sheppard Pratt) 병원에서 외래 진료를 봤었다. 빨간색 벽돌을 쌓아 올려 1850년대에 지어진 이 정신 병원은 탈원화 전에는 500명까지도 환자를 수용했던 곳이다. 메리 에인스워스(Mary Ainsworth) 박사는 이곳에서 낯선 상황 실험(Strange Situation)을 진행했었다. 이 실험을 통해 에인스워스 박사는 attachment 패턴을 몇 가지 타입으로 분류했다. 안정(Secure), 회피(Avoidant), 양가(Ambivalent)가 초기 분류 방법이었다. 앞에서 언급한 라이언스-루스 교수님은 추후에 추가된 혼동형(disorganized) 타입의 임상적 의의를 집중적으로 연구하신 분이셨다. 이러한 Attachment 타입들 중 Secure attachment이 한글 용어인 애착(愛着)의 뉘앙스를 더 잘 반영하는 용어라고 생각한다. 안정 애착(安定 愛着)은 ‘역전앞’과 같은 중복 표현이라고 생각하지만, 학계에서 통용되고 있는 용어인 만큼 여기 글에서는 Secure attachment의 한글 용어로 사용하도록 하겠다.
두 아들을 키우는 아버지로서 내가 체감한 애착은 ‘부착’이라는 느낌에 훨씬 가까웠다. 직접 경험한 느낌을 좀 더 잘 살리려면 ‘끈적’이나 ‘껍짝’ 같은 표현도 괜찮을 정도이다. 두 아들이 만 4세, 2세가 된 지금 시점에서도 ‘부착’은 진행 중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놀라울 정도로 양육자와 붙어있고 싶어 하는 본능이었다. 이 본능에서는 날 것의 느낌이 났다. 누가 가르친 것이 아닌 유전자에 새겨진 행동임이 분명했다. 바닥에 엎드려 놀고 있으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등 뒤에 올라타거나 어깨 옆에 밀착해서 엎드렸다. 정좌 자세로 앉아 있으면 무릎 위에 와서 앉는다. 밥 먹을 때도 기어코 무릎 위에 앉아 먹고 싶다고 하는 때가 있다. 자다가 깨면 우리 방으로 달려와 옆에 몸을 밀착하며 눕는다. 진정이 안 될 정도로 큰 감정 상태에는 울면서 “안아줘”를 외친다. “안아줘”라는 단어는 두 아이 모두 가장 처음 배운 단어 중 하나였다. 실험에서 봤던 리서스 원숭이와 어린 우리 아이들의 모습은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나머지 내용은 오프라인 서적으로 곧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