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4절
"문제를 찾으면 문제를 발견할 것이고, 해결책을 찾으면 해결책을 발견할 것입니다." - 김인수 (Insoo Kim Berg)
"가족과 사랑은 정원처럼 가꾸어야 합니다. 관계가 번창하고 성장하려면 시간, 노력, 그리고 상상력이 끊임없이 필요합니다." - 짐 론(Jim Rohn)
♪ Janet Jackson – Together Again
전임의 1년 차 수련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치료를 담당할 가족을 배정받았다. 첫 치료 회기가 한 달 후로 잡히자 떨림이 밀려왔다. 오래전 한국에서 처음으로 개인 정신치료 환자를 배정받았을 때와 비슷한 두근거림이었다. 치료실에서 정보 수집을 목적으로 가족을 만난 적은 많았지만, 가족 내 변화를 목표로 주기적으로 만난 적은 없었다. 마치 새로운 언어를 습득해서, 아직 가보지 못한 새로운 나라에 가서 생존해야 하는 느낌이었다.
‘사람 네 명을 불러놓고 제대로 치료를 못한다면 4배만큼의 사람들의 시간을 낭비해 버리는 것 아닌가?’
이런 류의 걱정에 휩싸인 나였다. CHA 병원에서 첫해 가족 치료 수련의 지도를 맡았던 신티아 미텔마이어(Cynthia Mittelmeier) 선생님은 내가 배정받은 가족과의 첫 회기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도록 매주 1:1로 만나 준비를 도와주셨다. 초반에는 가족이 치료 공간을 편하게 느낄 수 있도록 이끄는 초기 참여 과정(joining)과 가족 구성원 각자에게서 가족 내에 존재하는 문제에 대해서 듣는 작업을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해결 중심 가족 치료(solution-based family therapy)를 주된 접근 방법으로 채택하고 계셨던 미텔마이어 선생님은 고 김인수(Insoo Kim Berg) 선생님의 ‘기적의 질문(miracle question)’ 기법에 익숙해질 것을 나에게 요청하셨다. 이 기법을 말로 설명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며 유튜브 링크 몇 개를 보내주셨다. 현재는 돌아가신 대가의 기법을 영상으로 접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었다. 물론 그것보다 더 큰 행운은 바로 ‘이 영상’이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알려주는 스승을 만난 것이었다.
김인수 선생님의 강의 영상은 그 가치에 비해 낮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런 영상을 유튜브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나에게 추천했을 리는 만무했다. 알고리즘은 내가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클릭했던 영상들을 기반으로 더욱더 ‘시간을 허비’할 영상을 추천하기 때문이다. 내가 더 가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데 진정으로 필요한 정보는 과거 나의 행동 패턴이 아닌 외부에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가족 치료’라는 새롭고도 익숙지 않은 세계에 발을 쉽게 내딛을 수 있었던 것은 미텔마이어 선생님이라는 타인과의 만남 때문이었다. 역설적이게도 인공지능의 시대에는 타인과 실제로 마주하는 관계가 가지는 가치가 더 커질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여기서의 ‘타인’에는 가족 구성원도 포함된다.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웃고 울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것이 가지는 가치는 점점 커질 것이다.
영상으로 고 김인수 선생님을 만났다. 김인수 선생님은 한국에서 태어나시고 미국으로 건너와 왕성하게 가족 치료사이자 강사로 동하셨다. 미텔마이어 선생님에게서 소개받은 자료는 김인수 선생님의 2006년 싱가포르 강의 영상이었다. 안경을 끼고 짧은 커트 머리를 하고 호탕한 웃음을 띠고 계신 선생님은 마이크를 잡고 연단을 오고 가면서 흥겹게 강의를 하셨다. 그리고 ‘기적의 질문’을 가족에게 묻는 방법에 대하여 이야기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밤 당신이 잠든 동안에 가족에게 기적이 일어났다고 가정해 봐요. 지금 가족이 가지고 있는 문제가 밤 동안에 하나씩 다 없어지는 거예요...”
김 선생님은 가족을 천천히 상상의 영역으로 끌어가기 위해서 호흡을 길게 가져갔다. 문장 사이에 충분한 침묵의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했다. 진료실로 오는 가족에게는 괴로움이 산적해 있다. 가족이라는 체계(system)가 그 괴로움이 존속되도록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가족들은 진료실을 찾기 전까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를 한다. 여러 시도들이 실패하면 가족은 좌절감을 느낀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문제 있는 가족’이 되어 버린다. 가족을 머릿속에 떠올리기만 해도 한숨이 나오고 얼굴이 찌푸려진다. 가족에게 현존하는 문제가 사라졌을 때 어떤 환경에서 살게 될 것인가를 상상하는 것조차 불가능 해진다.
문제가 모두 해결된 가족의 모습을 상상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오래 사용하지 않아 녹슬었던 기계를 다시 가동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녹슨 기계의 톱니바퀴에 정성스럽게 기름칠을 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충분한 정적의 시간만 주어진다면, 가족 구성원들은 가족에 존재하는 문제가 무엇들인지, 그리고 그것들이 사라졌을 때 자신이 마주할 삶을 마음껏 상상하게 된다.
“그리고 내일 아침에 눈을 뜹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바닥에 발을 내려놓아요... 그리고 서서히 방문을 열고 나옵니다... 당신은 그제야 느끼게 됩니다. 기적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당신은 무얼 보고 기적이 일어났음을 깨닫게 될까요?”
이 질문은 “가족이 어떻게 바뀌었으면 좋겠어요?”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기적이 일어났음을 가정하는 순간, 가족의 상상력에는 날개가 달린다. 가족 구성원 각자는 기존에는 불가능하다고만 생각되던 가족의 모습들을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게 된다. 해결 중심 가족 치료는 '문제가 해결된 상태를 가족이 상상할 수 있다면, 그들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상정한다. 이 상상의 모습은 구체적일수록 좋다. “의사소통이 더 잘 되었으면 해요”와 같은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목표는 문제 해결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각 구성원 개인이 생각하는 ‘의사소통이 더 잘 되는 가족의 모습’은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질문이 구체적으로 기적이 일어났음을 ‘어떻게 발견’하게 될지 묻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질문은 기적이 일어난 경우 가족 내에서 무엇을 ‘보게’ 될지를 서로 이야기하도록 돕는다. 가족 구성원 각각이 머릿속에 그린 기적의 결과물을 돌아가며 공유하는 동안, 나머지 가족들은 개입하지 않고 오직 경청하도록 요구된다.
내가 처음 담당했던 퀸시(Quincy) 가족은 두 공간에서 살아가는 4인 가족이었다. 퀸시의 부모는 5년 전 이혼 하고 각자의 파트너와 함께 살고 있었다. 두 가정은 차로 약 30분가량 떨어져 있었다. 청소년인 퀸시는 한 살 많은 언니와 함께 살았다. 이 둘은 학교에서 더 가까운 어머니의 집에서 평일을 보내고 주말에는 아버지의 집으로 옮겨 가서 생활했다. 그러던 어느 날, 퀸시는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재혼 소식에 격분하여 방문을 걷어차고 접시를 던졌다. 접시 하나는 어머니의 파트너 발 바로 앞에서 깨졌다. 퀸시는 어머니의 재혼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새아버지가 될 사람의 자녀와 함께 살게 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재혼을 예견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으나 막상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자신을 통제하지 못할 정도의 큰 배신감과 분노를 느꼈다. 그런 감정의 폭발이 있은 후 퀸시는 어머니가 차려주는 밥을 먹지 않고 거부했다. 학교의 심리상담사는 퀸시에게 가족 치료를 권했다. 그렇게 진료실에서 나는 퀸시 가족을 만나게 되었다.
기적의 질문은 퀸시의 가족 내에 존재하는 문제가 정확히 무엇인지를 가족들이 (그리고 내가)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기적의 질문에 답변하는 과정에서는 그 어떠한 비판적 언어도 사용되지 않는다. 현재의 문제에 직접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나아가고 싶은 방향을 그리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방어적인 모습을 보일 필요가 없었다. 퀸시의 어머니는 기적이 일어났다면 딸들이 힘든 시기를 겪고 있을 때 지체 없이 자신에게 와서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라고 했다. 퀸시의 아버지는 딸들이 주말에 핸드폰을 내려놓고 자신과 함께 집 밖으로 나가서 즐거운 시간을 지금보다 더 많이 보낼 것이라고 했다. 퀸시의 언니는 부모가 이혼을 했음에도 서로를 비방하지 않고 존중이 느껴지는 언어를 사용할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퀸시는 기적이 일어난다면 부모가 가족 구성이 바뀌기 전에 자녀에게 미리 예고를 하고 그게 대한 생각을 물을 것이라고 했다.
구성원 각자가 가족 내에서의 갈등 해결을 위해 어떤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지 경청하는 것은 그 어떤 해가 되지 않는다. 해결 방안을 듣는 것과 그걸 해결책으로 채택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한 가족 구성원의 생각이 가족에 의해 경청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치료적인 경험이다. 내가 좋아하는 아델 페이버(Adele Faber) 육아서에서도 비슷한 접근법을 소개한다. 갈등 해결을 위해 부모와 자녀가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모든 문제 해결 방법을 비판 없이 종이에 우선 적어보는 걸 권한다. 어떻게 하면 자녀가 10시 통금 시간을 지킬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예를 살펴보자. 자녀는 극단적으로 ‘통금 시간 자체를 새벽 1시로 바꿔 늦게 귀가할 가능성 자체를 없앤다’는 해결책을 적을 수도 있다. 부모도 마찬가지이다. ‘아예 집 밖으로 못 나가게 해서 늦은 귀가를 방지한다’와 같은 극단적인 안이 나올 수도 있다. 그 어떤 급진적이고 충격적인 아이디어도 종이에 적히는 것을 막지 않는다. 양쪽이 머릿속의 모든 문제 해결 방법들을 적었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때부터는 부모와 자녀가 상대방의 가장 극단적인 방안부터 하나씩 펜으로 지워 나간다. 그렇게 하나씩 지워 나가다 보면 양쪽 모두가 수용할 수 있을 만한 중재안을 찾게 될 수 있다. 양쪽이 모든 안을 다 지워서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해도 괜찮다. 양쪽의 생각을 시간을 들여 확인했다는 것으로도 충분히 의의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현실에서는 가족 구성원이 마주 앉아 서로의 생각을 무비판적으로 들어볼 시간이 너무나도 부족해 보인다. ‘모두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 자체의 중요성을 간과한다면, 흔히 가족의 갈등 상황에서 한 구성원(주로 더 영향력 있는 부모 한 명)의 의견을 해결 방안으로 채택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문제는 빨리 해결된 것 같이 보일지라도, 가족 누군가의 마음속에서는 ‘내 의견은 어차피 묵살될 가치 없는 것’이라는 자기 표상이 커가게 될 것이다.
이렇게 가족 구성원의 ‘극단적인 해결 방안’을 들어보는 것과 ‘기적’의 결과물을 서로 공유하는 것은 결을 같이 한다. 각자가 바라보는 극단적인 지향점이 어딘지, 어떤 모습인지를 확인하고 나면, 그 지점에 도착하진 않더라도 그 방향으로 조금씩 이동하는 것에 대한 저항은 줄어든다. 새벽 1시 통금을 원한다는 자녀의 말을 듣고 나면 오후 10시 30분으로 통금을 옮기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게 느껴진다. 가족 치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가족 구성원들이 상상하는 이상적인 기적의 결과물에 대해서 듣고 나면, 그런 목표를 도달하는 건 어려워도 그런 목표를 향해 조금씩 나아가는 것에 대한 부담은 누그러진다. 해결 중심 가족치료에서 치료사는 이렇게 조금씩 가족이 움직이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고, 변화의 흔적을 발견하고 함께 기뻐하는 역할을 맡는다.
사춘기 딸이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부모에게 찾아와 자신의 이야기를 기꺼이 한다면 그건 정말 ‘기적’이다. 청소년들은 부모와 자신을 신체적, 정신적으로 분리하여 세상으로 뛰어들고 싶어 하는 존재들이다. 이들은 부모와 공유하지 않는 자신만의 삶의 영역을 점점 확대하려 한다. 그럼에도 부모에게 가족 문제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를 극단적으로 숨기려고 하는 대신 ‘지금보다 조금은 더 공유’ 해 보려고 노력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퀸시가 아버지 집에서 좋아하지 않는 여가 활동을 하면서 진심으로 즐긴다는 것은 불가능할지라도, 지금 보다 ‘조금만 더 오랜 시간’ 핸드폰을 내려놓고 아버지를 바라보는 노력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아주 작은 변화들이 가족 내에서 일어나면, 그 가족은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싹 틔우게 된다.
(나머지 내용은 오프라인 서적으로 곧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