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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학에도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이 반영될까?

실용 학문에도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포인트가 있다.

*매거진 번외편 입니다.


아주 뜬금없이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로 시작해 보자.

매일 아침 화장실을 가는 것은 모든 인간에게 중요한 일이다. 가장 건강한 사람은 별 다른 조치 없이 일어나서 어디서든 원활하게 배변활동을 하는 사람 일 것이다. 하지만 많은 현대인들은 다양한 이유에서 배변 활동을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여러 장치(!)에 도움을 받는다. 따뜻하게 마사지를 하기도 하고, 유산균을 먹기도 하고 자기 만의 방식들이 있다.


그런데 만약에 내가 쓰던 방식을 못 사용하게 되면 어떻게 할까?

공복에 커피 마시는 것으로 화장실을 가던 사람이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 때문에 카페인을 먹지 말아야 한다고 복약지도를 받으면 생각보다 막막해진다. 내가 화장실 가는 방법이 커피 마시는 것이었는데, 자제시키니 불안하고 대안도 안 떠오른다. 그중에는 변비약을 바로 먹는 사람도 있을 거고, 유산균을 평소 1포만 먹다가 2-3포 늘려서 먹기도 하면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할 것이다.


문제의 시작은 여기서부터다.

강하고, 효과적이고 단숨에 해결 가능하다는 극단적인 방법들이 주류를 이루면서 '기능주의'만 내세워진다는 점이다. 기능주의만 내세워진 세상은 삭막하다. 그리고 힘으로만 싸우게 된다.

과한 건 몸이 알아서 배설할 테니 일단 좋은 건 다 먹고 보자가 만연하면서 단계에 따라 강도를 올리거나 상황별 강약 조절을 하는 섬세한 접근이 너무 복잡하고 시시하게 여기게 된다.


그렇게 점점 음식의 영양 활용은 개별 차이를 반영하기보다 모두가 모든 것을 주의하는 방향으로, 적정량을 알려고 하기보다는 과함을 추구하고 그 파워게임은 점점 과격해진다.





일 하면서 느꼈던 답답함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알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정말 뚱딴지 같이 '아름다움'과 '결', 소위 요즘 말로 '추구미'에 그 답이 있었다.


더 솔직히 말하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우리 분야의 컨텐츠를 그렇게 소비하는게 싫었다.

인간이 본능적인 감각만 즐기는 것에서 더 발전해 건강을 고려해서 음식을 먹는다는 행위는 고차원적인 발상이었고, 그것을 섬세하게 실험하며 하나씩 발견해 온 연구자들의 다각도를 고려한 조심스러운 접근을

마구 남용하는게 싫었다.


지금 사회 전반적으로 영양학을 대하는 태도는 인본이 빠진 기능주의 위주의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름다움만 추구하는 아르누보에서 기능주의가 반영된 바우하우스가 나왔듯이, 인본이 빠진 기능주의 위주의 커뮤니케이션에서 삶, 즐거움, 필요한 기능만 사용해도 충분한 '절제미'가 지속가능하게 내 몸을 귀이 여기는 방법이자 아름다움으로 여기는 날이 올 것이다.


우리가 피부에 좋은 화장품이라고 하루에 수분, 주름개선, 안티에이징, 붉은기 제거 제품을 한꺼번에 모두 바르지 않는다. 영양분이 가득한 앰플이나 에센스도 나중을 생각해서 젊을 때는 좀 더 연한 화장품을 바른다.

그리고 피부 관리를 잘하는 고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결국 기초를 규칙적으로 잘 관리하고 세안을 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가 옷을 입을 때 멋있어 보이는 것을 한 번에 다 입지 않는다. 그것은 촌스럽다.

옷을 잘 입는 고수는 힘줄 곳과 뺄 곳을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결과 균형을 잘 잡는 사람이다.

무릇 세련됨이란 나에게 맞게, 적절한 선으로 상황에 맞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음식으로 내 몸을 관리하는 것도 다를 바 없다. 왜 내 몸을 자꾸 숫자와 기기에 맡기는가.

왜 필요 이상의 진액으로 몸을 혹사시키는가. 왜 시작부터 극단적인 방법을 남발하는가.


우리도 아름답게 영양학을 삶에 반영할 수 있다.

이건 고급, 멋진, 클린 한 요리만을 먹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평소 장건강에 좋은 식재료를 챙겨 먹다가 잘 안될 때 공복 커피로, 커피로 안되면 유산균, 유산균으로 안되면 푸룬주스, 푸룬주스로 안되면 약한 변비약 그렇게 섬세하게 몸을 대할 수 있다.


그와 더불어 친구와 술 '한잔'으로도 즐겁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위기, 스트레스 푸는 방법으로 '음식' 만큼 값싼 방법들이 많은 사회적 인프라, 답 찾기나 평가가 아니라 적절한 균형을 알아차리는 '음식 기반 영양 관련' 대화 문화 등 건강을 대하는 문화가 좀 튼튼한 기초를 기반으로 세밀하게 반영되면 좋겠다.



아름다움의 특징인 자연스러움, 과유불급, 균형, 그리고 딱 떨어지는 단조로움은 시각 영역, 예술 영역, 혹은 순수 학문 영역 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디테일, 섬세함, 과유불급 같은 것들이
실용주의, 인본주의와 함께 실용 학문에 어우러진다면
각자의 우주가 아름다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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