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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예술 계통 기획자가 예술사를 이해하면 좋은 점

표현법 이상을 전달할 수 있는 '시대 별 예술계 movement'의 의미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지만 가고 싶은 방향이 있을 때가 있다.

그것이 가치나 개념일 때가 있고 작업물로 만들어내야 할 때가 있다.

그러면 협업을 해야 하고 내가 가진 머릿속 생각을 최대한 잘 표현할 수 있어야 하는데, 비예술 계통 출신자로서 어떤 개념을 비주얼뿐만 아니라 통합적으로 전달할 때 참 어렵다.


무책임하지만 가장 날것으로 표현하자면 느낌이 그게 아닐 때가 가장 난감하다.

내 나름대로 구체적인 언어와 이미지로 설명했지만, '아 이게 아닌데 설명을 못하겠네..' 싶으면

듣는 입장에서 답답하겠지만 당사자도 무지 답답하다. (네 답답하고 미안하고 그렇습니다 ㅎㅎ)



예를 들어 '나무로 된 심플한 가구와 의자가 세팅된 아늑한 분위기였으면 좋겠어요'라고 했을 때 아래 이미지 모두 그에 해당된다.

출처: 행복이 가득한 우리 집 - 셰이커 교도에게 배우는 가드닝의 기술 https://happy.designhouse.co.kr/magazine/magazine_view/00010
출처: Scandinavian mid-century modern vertical desk or secretaire shelving unit in teak, 1960s


하지만 느낌으론 천지차이다.

여기서 '저는 이렇게 뚫린 책장이면 좋겠고 나무 질감 톤이 이렇게 바뀌면 좋겠고.. ' 등등 하나하나 이야기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의사소통 하면 요구사항은 많지만 그 '느낌'은 잘 표현 안된다는 걸 자주 경험했다. 그래서 서로 힘들기만한 성가신 커뮤니케이션이 되어버린다.


느낌의 차이를 알아채지만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이유는 표현할 수 있는 언어 재료가 적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허리 오른쪽이 아파요'라고 말하는 대신에 '오른쪽 요방형근이 짧아서 불편해요'라고 표현하면 상대방이 보다 정확하게 요구조건을 맞춰줄 수 있다. (좋은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 평생 공부해야 하는건 어쩔 수 없나보다..)


음악이 됐든 인쇄물이 됐든 컨셉 전반에 대해 정교하게 소통하고 싶을 때 '내가 원하는 표현이 주류였던 시대의 무브먼트(운동)'를 알아보고 그것이 내포한 의미까지 원하는 바와 일치하면, 더 섬세한 정렬이 가능하기 때문에 같이 전달하는 게 여러모로 효과적이었다. 모든 시대마다 어떤 풍이 나오기까지 다양한 사회문화 현상이 축적되어 기조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다시 예시로 돌아가면, 같은 미니멀을 추구해도 셰이커교도 가구와 북유럽 가구가 내포하는 중심 가치는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하지만 '느낌'이 다르다.


■검소함과 자급자족이 낳은 미니멀한 가구

1800년대 후반 미국에서는 셰이커 교도의 가구가 대중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 미국에서는 유럽에서 전파된 신고전주의 양식이 유행했다. 조각이나 금속장식, 상감 등의 시각적인 면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다. 반면 셰이커 교도들이 종교적 신념에 바탕을 두고 제작한 가구는 공간 활용과 생활 방식에 도움을 주는 절제된 형태의 독창적인 모습이었다.
...
이들은 꾸밈없는 재료로 기능성이 담긴 외형의 가구를 생산했다. 사물을 만드는 것 자체가 기도하는 행위라 믿었던 그들은 솔직함과 단순함이 어떻게 기능적 아름다움을 갖춘 가구로 구현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줬다.... 셰이커는 공동 소유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의자는 이동이 편하도록 가볍게 만들어져 기도나 청소할 때는 벽에 걸어놓을 수도 있었다.

출처: https://realty.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1/02/2017110201164.html


■ 부자이건 가난한 자이건 모두가 안락한 의자에 앉을 권리가 있다. 자연에서 훈련된 마음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라

북유럽은 지리적 여건상 공업화로 대변되는 산업혁명의 물결에서 소외되었다. 이 때문에 북유럽은 근대화 과정 이후에도 독창적인 문화를 유지하며 스칸디나비아 부류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북유럽디자인이 시간을 두고 주목받는 이유는 대물림할 수 있도록 끝맺음이 완벽하고, 작품 속에 솔직한 마음을 담았기 때문이다... 1900년대에 들어 예술과 기술의 융합을 목표로 세워진 독일의 바우하우스(Bauhaus)가 유럽 전역을 강타했지만 역시 북유럽에서의 영향력은 제한적이었다. 유럽 대다수가 바우하우스가 제안한 철제 프레임을 받아들였지만 곧 북유럽에서는 목재로 대체되었다.
... 직접 자르고 다듬으면서 공예가의 정교한 작업은 발전한다. 이러한 생각은 1919년 스웨덴의 ‘일상용품을 더 아름답게’ 선언으로 이어진다. 일반 시민들이 평소에 사용하는 일상용품이야말로 아름답고 기능적이며 좋은 품질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여타 북유럽 국가에 전달돼 기능미를 갖춘 오늘날 북유럽디자인의 토대로 발전한다.

출처: https://m.woodplanet.co.kr/news/view/1065614746559695



이건 음악에서도 마찬가지다.

뉴진스 음악 덕분에 댄서나 뮤지션이 아닌 예술에 관심이 있는 대중들도 알게 된 Club Music 장르 중 하나인 저지클럽 (Jersey Club). 저지클럽도 그 장르의 취지를 이해하고 나면 표현 '방식' 이상으로 그 장르가 내포한 가치관까지 이해할 수 있다. 저지클럽 음악은 볼티모어 클럽 음악에서 착안되어 시작되었지만, 해당 음악 주 소비층이 10대 20대라는 것을 알고 나서 디제이들은 그들을 위해 건전하고 행복한 바이브를 유지하고자 노력했다.


It's always easy to get in trouble putting your energy into
something negative. Jersey Club culture actually inspires the kids
to be great at something.

에너지를 부정적인데 쓰다 보면 항상 문제가 발생하죠.
Jersey Club은 아이들이 무언가를 잘 해낼 수 있도록 힘을 줍니다.

2014. The FADER, DJ Sliink

출처: 유튜브 채널 우키팝 - 지금 가장 주목해야 할 장르ㅣJersey Club(저지 클럽) 이야기(링크)


즉, 강한 비트와 반복되는 저지클럽만의 표현법이 분명히 있지만 조금 더 깊게 이해하고 개념을 적용하면 훨씬 풍부하게 개념을 적용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 10대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저지클럽스럽게 하자'라고 컨셉을 잡으면 원하는 방향성이 전체적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이 역시 더 효과적일 것이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야 하는 상황에 자주 처하는 기획자, 연구자, 대표 등에게 미술 화풍, 디자인, 대중음악 역사 등 예술 계통의 역사 속 무브먼트는 많은 영감을 줄 수 있다. 그건 아마도 결과물이 비예술 계통보다 직관적이기 때문에 볼 수 있는 자료가 많기 때문이다.


헬스케어, 스타트업, 콘텐츠 제작.

새로운 개념이 많이 나오는 요즘이야말로 다시 과거를 보며 힌트를 얻을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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