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회사와 이별한 날

퇴사를 결정하고 마지막 날까지의 이야기


시끌시끌했던 지난 2주를 뒤로하고 퇴사한 첫날이다.

울고 웃으며 팀원들과 이야기를 나눈 게 바로 어제인데, 마치 어바웃 타임에서 남자 주인공이 파티 끝나고 일어난 다음날 아침 침대 씬처럼 무중력 상태에 있는 듯 멍한 기분이 든다.


나에게 이곳(전 직장)은 어떤 곳이었을까?

사람을 배우고 일을 배우는 자유로운 학습의 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나는 이곳에서 쌓았던 시간을 토양 삼아 다음 단계들을 준비할 것이다.


- 2020. 4월 퇴사 다음 날 썼던 메모



“네, 제인 앉아요.

제인이 COO 역할을 해주면 좋겠는데,

페이는... 서비스 방향은.... 앞으로의 팀 구성은... ”



주어진 상황에 따라 나름의 최선을 다했던 나의 첫 스타트업. 그곳은 다시 한번 변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변화에 맞게 나에게도 새로운 제안이 들어왔다.


회사 상황에 따라 다양한 직무 경험을 한 것이 나에게 자산이었고, 사람이 들어오고 직급이 올라가면서 배우는 것이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철없는 치기도 회사에서 많이 받아줬고 열정 때문에 보지 못한 부분도 회사는 수용해줬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금 새로운 제안이 들어왔을 때 고민이 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다.

많은 배움도 좋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키워가고 싶은 나의 커리어와 해결하고 싶은 문제에서 계속 멀어지는데 ‘미래에 언젠가 그 일을 할 수 있겠지’ 희망으로 있기엔 쳇바퀴처럼 이 세팅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가장 솔직한 면담

비록 운영진의 행보는 나와 달랐지만 최후의 순간엔 서로 간에 항상 솔직했기 때문에 이런 생각들이 들 무렵 연봉 협상 기간이 왔고, 대표님과 한 달 동안 여러 차례 완전히 솔직한 면담을 진행했다.


처음엔 이 생각이 ‘상황에 휩쓸려서 내린 감정적인 의사결정이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컸다. 그래서 면담 날짜를 꺼내기 전에 수없이 시뮬레이션하고 조언을 구라면서 고민했었다. 하지만 오히려 면담을 하면서 생각 정리가 더 빠르게 되었다. 숙고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그랬던 걸까? 그건 모르겠다.

아마도 물어보지 못했던 이야기들부터 내가 느꼈던 감정들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회사의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추측’이 ‘현실’이 되니까 더 분명해졌던 것 같다.


그래서 완전한 솔직함이 회사에서 필요하다고 하나보다. 입장 차이를 이해하면 옳고 그름이 아니라 다름을 납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퇴사 시점을 정하다

신규 서비스는 기획 방향이 다 정해진 채로 내게 넘어왔다. 그래서 나의 퇴사 시점이 서비스에 미치는 영향은 적었다. 하지만 내가 맡은 사이드 프로젝트가 있어서 그 프로젝트 론칭과 마무리까지는 하고 우리 파트 후임의 퇴사를 마무리하고 파트 클로징을 할 수 있는 시점을 퇴사 날로 정했다.

그러니 3주에서 한 달 정도 지난날이었다.


퇴사를 준비하다

어떤 순으로 언제 이야기해야 하고, 나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그것도 처음이라 인터넷으로 찾아보면서 웃었던 기억이 난다. 후임 친구도 퇴사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가이드도 해야겠고 나도 모르겠고. 그래서 이것도 스터디해서 나가네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제일 중요한 건 맡은 일을 어떻게 끊기지 않게끔 다른 팀원들에게 넘길 것인가, 협력사와 일로 만난 외부 분들과 어떻게 인사하고 상황을 전달할 것인가, 그리고 팀원들에게 인사할 것인가였다.


가장 처음 했던 건 회사에 계신 분들께 순차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미리 눈치챈 팀원도 있었고 결국 결정했다는 소식에 놀란 사람도 있었다. 조직 문화를 맡고 있었고 회사 전체 팀원과 커뮤니케이션할 일이 많았기 때문에 모든 게 결정되기 전에 약간의 마음의 준비는 할 수 있게 일대일로 만나서 먼저 간단한 상황 공유는 했었다. 그리고 최종 결정을 하고 나서는 직함 순보다는 내 업무와 가장 접점이 큰 사람, 친하게 지낸 사람부터 순서대로 이야기했다.


추천서 작성을 팀원들에게 요청했다. 효력이 없을 수도 있지만 같이 일했던 실무진 팀원들이 쓴 추천서를 가지고 있으면 나중에 다른 회사에 지원할 때 첨부 자료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나 역시 미리 팀원들 추천서도 써서 전달하였다.


일은 최대한 뒤에 있는 일정까지 당겨서 서비스 론칭 + QA까지 해놓고 나가고 싶었다. 그래서 팀원들에게 일정 조율을 요청하고 1.3배속 정도로 빠르게 진행했다. 대부분의 일은 가이드 문서로 만들었지만 초반 셋업 과정을 알면 트래킹 하기 쉬울 테니 진행하면서 관련 파트로 업무 분담도 함께 했다.


일로 만난 협력사분들께는 내 소식과 함께 개인 이메일, 인수인계받을 팀원 연락처를 공유드렸다. 그 메일 덕분에 퇴사하고 많은 분들과 식사자리, 티타임을 하면서 조언과 응원도 많이 받았다. 정말 고마웠던 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짐은 대부분 정리하면서 처리해야 할 문서나 회사 카드 반납, 컴퓨터 반납 등도 미리 했다.


다음 행보에 대한 당시 생각

은 공백이었다. 첫 경험을 하고 나서 생각을 리셋해보고 싶었는데 그 이유는 회사와 사회, 돈, 나의 벽들이 느껴졌고 하고 싶은 직무도 많아서 정리가 필요해 보였기 때문이다. 나가서 뭐할 거냐는 질문을 제일 많이 받았었는데 그때 솔직하게 안정해졌다고 말하기까지 불안했는데 꾸미지 않고 대답하길 잘했던 것 같다.



퇴사 날

참 복잡 미묘했다. 이 날 술 많이 마셨는데.

후련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고. 그전에 9명의 팀원을 보내고 면접 보고 불합격 통보를 보낼 때도 매번 마음이 싱숭생숭했는데 막상 내가 회사를 떠날 때가 되었는데 실감은 안 나고 기분은 이상했다. 그래도 나름 의연해져서 첫 팀원과 인사할 때보다는 눈물이 없어졌다.


마지막 날 아침 회사 메일 계정을 지우고, 노트북 포맷을 하고, 출입 키를 빈 책상에 올렸을 때


아.. 이제 진짜 끝이네


라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제일 오래 고생한 팀원이랑은 눈만 마주치면 울었었는데 그때는 마음만 끝이었는데 빈 책상은 현 세상에서도 끝이다를 눈 앞에서 보여주니까 슬픔 보단 먹먹했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정말 큰 회식을 끝으로 나는 2년 3개월 간의 열정적인 첫 스타트업 생활을 마무리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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