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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질현 Nov 07. 2020

영국 일기. 또다시 락다운

사실 나는 일차 락다운 때에 한국에 있었다. 그래서 말로만 건너들은 셈이다. 영국 사람들 말로는 일차 락다운 때보다는 많이 융통성 있어졌다고들 한다.


맞는 말이다. 영국에 온 지 일주일이 조금 지나서부터 지점이 여러 군데 있는 카페에서 백업으로 정해진 요일에 풀타임으로 일을 했다. 2차 락다운이 발표되고 이틀 후, 11월 스케줄 표의 스케줄은 모두 취소되었다는 매니저의 연락을 받았다. 한 달 동안 실업자가 된 셈이다.


이 글을 적은 오늘은 이튿날이다. 하루가 길다고 느껴졌지만 그러려니 했다. 늘어지지 않으려 눈 뜨자마자 샤워를 하고, 오전에는 구상 중인 일 시장조사를 하는데에 시간을 할애했다. 한두 시간이면 적당할 줄 알았는데 오전 내내 노트북 앞에 앉아있었다.


점심을 먹고 집을 나섰다. 이제 막 삼 개월 된 아기 고양이 감자가 눈에 밟혀 긴 산책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생필품을 사기 위한 외출 겸 산책은 필요하다 생각했다. 시내에는 그래도 꽤나 사람들이 있었다. 여전히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정해진 시간 오후 두 시에 아기 고양이 감자의 생식을 그릇에 덜어주는데 플랏 메이트 클레어가 주방을 쓰는 중이라 거실 탁자에서 생식을 덜었다. 제대로 정리했다고 생각했는데 다섯 시가 조금 넘어 도착한 애인이 여전히 실온에 나와있는 생식 통을 보고 화를 냈다.


평소 같았으면 미안- 하고 지나갈 일인데 사람은 역시 무기력에게 지고야 만다. 일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 만으로 무기력에게 한쪽 어깨를 내내 짓눌린 기분이었는데 그새 자존감까지 말랑말랑하게 만들었나 보다. 별 거 아닌 일인데 눈물이 나니 괜히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보고 싶어 지고, 그런 종류의 그리움은 역시나 꼬리에 꼬리를 문다. 혼자 방에 들어가 맘 편히 펑펑 울었다. 역시나 나는 주기적으로 눈물을 쏟아낼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잠잠해진 저녁, (내 기준) 난이도 중상에 가까운 유튜브 요가 채널의 한 시간짜리 시퀀스를 틀었다. 적당히 울고 나면 찾아오는 나름의 그 단단한 마음이 있다. 약간의 집요함과 한 스푼 정도의 열정, 우직한 마음 같은 재질이라 나를 쿨한 여성으로 만들어준다. 그렇게 한 시간의 요가를 불태웠다. 온몸이 여기저기 쫙쫙 펼쳐진 기분이다.


꾸깃해진 마음이라는 건 말 그대로 마음일 뿐이라는 걸 다시 체감한다. 요가 내내 내 옆에서 뒹굴거리며 나를 깨물고 핥기를 반복하던 감자(고양이)를 보고 웃음이 터져 나온다. 눈물을 쏟아낼 때에 무분별하게 쏟아져 나오던 그리움은 2프로의 진심과 98프로의 허상이라는 걸 아는 나이가 되었다. 울음에 약간 부은 눈을 하고 앉아 글을 적는다. 오늘은 조금 꾸깃했던 락다운 이튿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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