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하루를 보냈다.
나는 무기력을 느끼고 있나, 하고 스스로에게 하루 동안 세 번 정도 물었다. 그 질문을 한다는 자체가 내가 조금 정체된 마음을 느꼈다는 신호라고 여겨졌다. 도통 가만히 책을 읽거나 드라마에 온전히 집중을 하지 못한다. 어제는 꽤나 괜찮았고 필사도 하며 즐거웠는데 오늘따라 이상하다. 될 일도 안될 날인지 오전부터 잡음이 많았다. 점심 먹기 전까지 애인과 두 번이나 다투고 눈물이 그렁그렁 해졌다.
그런 마음을 조심해야 한다. 가족 없이, 친구도 만날 수 없는 락다운이라는 시기인 요즘에는 나 자신이 나의 마음과 기분을 구분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화가 나고 울컥할 때엔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찾아온다. 예를 들면 ‘나는 여기서 지금 무얼 하고 있나.’, ‘이러려고 다시 돌아온 영국이 아닌데.’, 또는 ‘한국에 있었다면 훨씬 더 자유로웠을 텐데’로 시작해서 ‘엄마 보고 싶어....’로 끝나는 그런 류의 레퍼토리들.
나라는 사람으로 스물일곱 해를 살아보니 이제 조금은 나를 알 것도 같다. 나는 추억을 아름답게 미화하고 그리워하는 경향이 아주 짙으며 현재에는 늘 채워지지 않는 결핍과 공생하는 스타일이다. 값비싸고 저렴하고의 문제를 떠나 무언가를 자꾸 사고 싶어 하는데에 시간과 생각을 오래 할애하는 편이기까지 하니까 그야말로 낮은 자존감의 민낯이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는 셈이다.
다시 제목으로 돌아가 보자. 나는 무기력을 느끼고 있나. 응.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감정적이라 그쪽 촉각이라면 곤두서 있는 사람인 나는 내게서 오는 무기력의 신호를 느꼈다. 우울감 또한 눈치챌만한 증거는 ‘내일도 오늘이랑 비슷하겠지?’, ‘나아질 일이 없네’라는 생각을 했다는 것에 있다. 오늘과 내일은 분명히 다르다. 어떻게 아냐고? 내가 오늘과 다르게 살 거니까. 안개 낀 날도 있고 청명한 날도 있는 거지 오늘 하루 안개 꼈다고 내가 있는 영국이 안개 공화국이 될 일은 없다. 평소에 여덟 시에 일어나는 나는 내일 아침엔 한 시간 일찍 일어나 글을 써보려 한다. 도저히 펜이 쥐어지지 않는다면 책을 삼십 분 읽어야지. 그마저도 힘들다면 거실에 앉아 고요히 명상을 해봐야지. 내일은 조금 더 나은 글감으로 글을 적게 되기를 마음 다해 바래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