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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PD Dec 08. 2018

대도서관이 시사 라디오를?!

'시사자키 대도서관입니다' 제작기 #1



2018년 7월 18일 밤 10시 11분. 팀 카톡방에 새 메시지가 올라왔다. “여러분 야밤에 놀라지 마십시오” 이게 무슨 일이지. 방송 내용에 문제가 있어서 클레임이 왔나, 혹시 티베트 눈이 녹아 극심한 폭염이 왔다는 인터뷰 기사가 대박을 쳤나. 둘 다 아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뒤에 이어지는 네 글자는 ‘대도서관’이었고 그 뒤의 두 글자는 ‘가능’이었다. 그리고 느낌표 10개.


“대도서관 가능!!!!!!!!!!”


구독자 170만(당시 기준)의 크리에이터. 유튜버 하면 떠오르는 그 이름. 문자 그대로 유튜브의 신(神). 바로 그 대도서관이 시사라디오 프로그램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의 스페셜 MC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게 실화냐


여름 휴가철이 다가오면, 데일리 시사프로그램 제작진은 고민에 빠진다. 휴가철엔 뉴스가 많지 않고(=구성과 섭외가 힘들고), 제작진들도 돌아가며 휴가를 다녀와야 하고(=인력이 부족하고), 무엇보다 진행자도 휴가로 자리를 비울 수밖에 없다. 제작진 한 명이 없는 것과 진행자가 없는 것은 천지차이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손석희의 시선집중>, <유희열의 라디오 천국>, <두시의 데이트, 박경림입니다> 등등 라디오 프로그램 이름엔 항상 진행자의 이름이 들어간다. 프로그램의 정체성 중 상당부분을 진행자에게 의존한다는 뜻이다.


시사자키 제작진 역시 오랜 시간 고민했다. 몇 차례의 회의에서 여러 이름이 오르내렸다. 대도서관의 이름도 그 중 하나였다. 대도서관이라는 단어와 시사라디오라는 단어를 충돌시키면 두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1) 예능형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시사라디오 진행을 할 수 있는가. 2) 시사라디오 중에서도 <시사자키>라는 프로그램의 진행에 어울리는가.




일단 대도서관이 ‘라디오’ 진행을 할 수 있을까. 못할 게 무엇인가. 그는 매일 방송을 하는 전문가인데다 심지어 개인방송 초창기엔 아예 라디오의 문법으로 콘텐츠를 만들었다. 댓글을 읽어가며 시청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노래를 틀고. 자기 이야기를 풀어가고.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수준이다. 그렇다면 ‘시사 라디오’는? 결과적으로 문제없었지만, 섭외 당시에 이 질문은 철저히 제작진의 노력으로 채워야 하는, 일종의 도전으로 남았다. 그래도 '시사자키 대도서관입니다'를 상상하면 “재밌겠다”는 생각부터 떠오르는데 그 정도 도전이 무슨 대수였을까.


아차, 두 번째 질문. <시사자키>와 대도서관이라는 진행자가 어울리는가. 연성화 된 시사 팟캐스트가 인기를 끌고 그 문법이 지상파 라디오까지 점령해가는 시대에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같은 프로그램은 희귀하다. 간단히 말해, <시사자키>는 (진행자의 표정만큼이나) 엄격-근엄-진지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이슈의 최대 쟁점과 핵심으로 바로 파고드는 질문, 잡담과 농담보다는 알맹이를 중시하는 진행 스타일이 우리들의 시사자키, 정관용 교수님의 특징이다.


그런데 대도서관이 이런 진행을? 그건 전혀 그의 몸에 맞지 않는 옷이다. 대도서관이 진행하는 시사프로그램은 날카롭기보다는 말랑한 시사, 핵심 쟁점을 파고들기보다는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쉬운 시사, 청취자들과 스킨십을 늘려가는 시사일 수밖에 없다. 


시사자키 대도서관입니다 예고영상


그렇다면 대도서관은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라는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흔드는 진행자가 아닐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래도 된다’와 ‘그럴 리 없다’이다. 먼저, 그래도 된다. 방송인이라면 <무한도전>마냥 매번 특집을 하겠다 결심하지 않더라도, 새로운 스타일의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구가 있기 마련이다. 짧은 기간이라도 기존의 <시사자키>가 가지고 있는 구성과 분위기와 다른, 일종의 파일럿을 해볼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대도서관은 매우 좋은 스페셜MC였다.


그리고, 그럴 리 없다. <시사자키>는 프로그램의 기원을 따지면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고 정관용 교수님이 진행한 세월만 9년이다. 아무리 색깔이 다른 방송을 해도, 열흘간의 특집으로 <시사자키>라는 정체성이 흔들릴까? 제작진이 대도서관을 섭외하기로 했다는 말을 듣고 고정 패널 한 분은 “제작진의 자신감에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다. 흔들리지 않기 때문에 도전할 수 있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나중에 들었지만 대도서관이 흔쾌히 스페셜MC 요청에 응해주었던 것도 <시사자키>가 가지고 있는 정통 시사프로그램이라는 이미지 때문이었다.


어쨌든, 다 됐고, 대도서관인데 무슨 이유가 더 필요하겠는가. 고맙게도 대도서관은 섭외에 바로 응해주었다. 폭염이 한반도를 덮친 그날 밤. 나는 더위 때문이었는지, 기대감 때문이었는지, 혹은 약간의 불안감 때문이었는지 잠들기가 쉽지 않았다.


특집방송 첫 날은 8월 15일. 남은 시간은 딱 4주였다.



(다음 글에 이어집니다 - "대도서관, 혹시 타고난 시사자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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