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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PD Jan 11. 2019

언론의 주목경쟁, 답답함과 부끄러움

언론사 SNS 계정 해시태그 논란


오늘 하루는 눈을 뜨자마자 언론사 SNS 계정의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이슈가 밀려왔다.


https://twitter.com/xlqptdudn/status/1083203027220103169


언론사의 공식적인 SNS 계정 운영 문제, 해시태그부터 기사 링크를 공유하며 붙이는 코멘트까지, 이것도 사실 하루이틀 문제제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별다른 내용 없이 감탄사만 붙이는 YTN 트위터 계정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고 오늘 오전 내내 해시태그 2차 가해로 지목된 노컷뉴스 계정 논란도 사실 다른 언론사 계정들이 몇 번이고 겪었던 일과 유사하다.



언론이 공공선에 복무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2차 가해 수준의 해시태그는 물론이고 '유희'의 성격을 가진 해시태그도 비판해왔다.아마도 이게 무슨 저널리즘이냐, 라는 맥락이었을 것이다.


나는 많은 부분 그러한 문제제기에 공감하고 해시태그 따위는 없애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포털과 SNS가 언론 콘텐츠 소비의 주요 채널이 된 시대에 그 문법에 맞추어 구독자를 늘리고 반향을 얻으려는 언론사 직원들의 고민은 나의 고민이기도 하다. 2차 가해 하지마, 누군가에겐 삶이 걸려 있는 논의를 가벼운 농담 거리로 소모하지 마, 까지는 당연히 지켜야 하는 원칙이겠으나 언론사가 생산하는 콘텐츠는 대개 그 정도로 중대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고(이건 이것대로 문제일 수 있겠다) 같은 내용이라도 포장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팔리는 수준이 다르다고들 '믿는다'.


그러다보니 언론 종사자들도 '구독자수 증가'와 '좋아요'나 '리트윗', '공유'를 늘리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고 자연스레 넷상의 주목경쟁 문법을 차용할 수밖에 없다. 그 길의 끝에 일베가 있다는 사실을 알더라도(모르는 경우도 많아보인다만) '이 정도면 괜찮겠지'라며 /재미/를 다른 가치 위에 둔 채로 하루이틀 지나다 보면, 그런데 누군가 브레이크를 걸어주지 않는다면 어느새 일베와 다를 바 없어진다. SNS 유통이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생산하는 콘텐츠 자체가 그렇게 된다. 대중이 궁금해 한다는 이유로 성범죄 피해자의 신상을 캐묻는다거나, 확인되지 않는 사실들로 이러쿵 저러쿵 음모론을 쪄낸다든가 하는 문제가 괜히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건 누군가의 삶에 대한 논의를 '공공'의 영역에서 다룰 때는 '재미'나 '좋아요'나 '화제성'보다 우선시해야 되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걸 끊임없이 말하는 사람들이다. 문제는 그런 사람들만 모아놓고는 팔리는 콘텐츠 만들기가 쉽지 않다(는 믿음이 언론사 내부에 퍼져있다)는 것이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만들면서 정치적인 올바름도 지켜야 한다는 건데 이건 상당히 고난도의 줄타기다. 그리고 이 업계에서 이걸 고민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아 보인다. 언론밥 먹은지 1년 밖에 안됐지만 이 일의 성격 자체가 내가 제일 많이 알고, 굳이 구구절절 확인해보지 않아도 이 사안의 본질은 무엇이고, 저 사람의 의도는 무엇이고 등등의 오만함을 키우기에 매우 적절하다는 것을 확인하는데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이런 토양에 주목경쟁이 더해지니 온갖 SNS 참사나 팟캐스트 저널리즘 논란 같은 게 벌어질 수밖에.




오늘 하루를 돌아보다 주절주절 풀어놓은게 너무 길어졌는데 어쨌든 나도 이제 언론 소비자나 언시생이 아니고 내부자인 신세라 답답함과 부끄러움이 함께 온다. 답답함은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콘텐츠를 만들면 정말 안 팔리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고, 부끄러움은 팔린답시고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콘텐츠들을 지금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 내가 일하는 팀에서는 전자가 후자보다 압도적으로 많기에 맨정신 유지하고 있지만 언제까지고 여기에만 있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엔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결론으로, 나쁘지 않으면서도 팔리는 콘텐츠를 만드는 실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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