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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PD Jan 28. 2019

김미숙이라는 이름

故김용균씨의 어머니가 남긴 마음


오늘은 故김용균씨의 49재였다. 원래 49재는 사람이 죽은 뒤 49일째 지내는 의례, 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지난 금요일, 故김용균씨의 어머니인 김미숙씨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불교식 의례라는 것을 알게 됐다. 웹툰과 영화 <신과 함께>로 익숙한, 망자가 저승에서 머무르며 심판을 받는 기간의 마지막 날이라 하여 49재를 지낸다고 한다.


49재는 이승과 작별하고 저승으로 가는 날이라고 들었는데,
아직도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시신을 냉동고에 놔둬야 한다는 현실이
너무도 비참합니다.


오늘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故김용균씨의 49재와 범국민추모제에서 어머니 김미숙씨가 하신 말씀이다. 김미숙씨는 아들을 떠나보낸 뒤, 그 동료들이라도 지켜야겠다며 태안의 화력발전소로, 국회로, 청와대로, 광화문으로, 그리고 온갖 언론사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지난 금요일은 우리 회사 차례였다. 회사 1층 로비에서 일행과 함께 기다리시는 모습을 보자마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엘리베이터로 모셨다. 스튜디오로 가는 복도에는 기자 선배 두 분이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따로 소개를 드리지도 않았는데 김미숙씨가 지나가는 걸 보자 두 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90도 인사를 드렸다. 뜬금없어 보이는 광경이었지만 나도 그랬기에 전혀 그 마음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인터뷰가 시작되기에 앞서 잠시 대기하는 시간, 김미숙씨는 손에 꼭 쥐고 오신 종이를 꺼내어 내용을 확인하셨다. 사전에 전해드린 질문에 대한 답을 직접 손글씨로 써오셨다. 긴장하고 계시는 게 느껴졌다. 아무리 여러 차례 인터뷰를 하셨어도, 여전히 마이크 앞에 선다는 건 어려운 일이셨을 테다.


인터뷰가 시작됐다. 김미숙씨의 목소리와 화법은 흔히 말하는 ‘좋은 인터뷰이’와는 거리가 멀다. 말이 자주 끊기고 긴장감이 뚝뚝 묻어나는 답변이 많았다. 하지만 그런 형식적인 문제 따위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인터뷰는 25분 조금 못되게 진행됐고 스튜디오 밖에서 콘솔을 잡고 있던 나는 몇 번이나 울컥하는 마음에 고개를 숙여야 했다. 그만큼 김미숙씨의 감정과 진심만큼은 분명하게 전해졌다. 이게 목소리의 힘이라는 걸 느꼈다.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은 ‘문재인 대통령에게든, 시민들에게든 하고 싶은 말씀을 남겨주신다면요?’였다. 김미숙씨는 대통령과 시민들 모두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직접 손글씨로 써온, 자신만의 답변서를 꺼내어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


하루에 6~7명, 1년에 2000명가량이,
안전장치만 갖추어진다면 죽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도,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 그 하루에 6~7명, 1년에 2000명이라는 숫자 안에 자신의 아들이 포함돼있는 어머니가 나서서 두 달째 거리에서 지내야 한다는 상황도 너무나 끔찍하다.


이 끔찍함의 사슬을 끊어내는 건 정부의 몫이다. 인터뷰의 요지는 명확했다. 1)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 2) 대통령의 약속과 지시가 현장에서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김용균법에는 김용균이 빠져있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저항에 부딪혔고, 진상조사 과정에 유족들은 관여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만나달라는 것이다.



법을 바꿔야 되는데 왜 대통령에게 따지냐는 사람들이 있다. 이미 김미숙씨는 지난 연말을 국회 앞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렇게 통과된 산안법 개정안이 누더기인 것은 다시 국회의원들에게 따질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사고 진상조사와 공공부문 안전업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는 행정부 소관이다. 그러니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는 것이다. 새로운 요구를 받아들여달라는 것이 아니다. 왜 진상조사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은지, 안전업무를 하는 비정규직이 왜 20개월째 정규직 전환이 안됐는지, 그래서 최소한의 안전장비를 구입해 달라, 죽음의 위기에 놓였을 때 안전장치를 당겨줄 사람과 함께 일하게 해달라는 요구조차 묵살당하고 있는지, 대통령이 직접 살피고 해결하겠다 약속해달라는 것이다.


김미숙씨는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면서 눈에 보이는 사람마다 연신 잘 부탁드린다며 고개를 숙이셨다. 모든 사람들이 마주 고개를 숙였다. 김미숙씨를 다시 1층 로비로 모시고 나가면서 내 입에서 감사하다는 말, 건강하시라는 말, 힘내시라는 말이 몇 번이나 나왔는지 세지도 못했다. 쉽게 위로의 말조차 건네지 못할 정도로 마음이 내려앉았다.


주말 사이, 몇 번이나 이 인터뷰를 반복해서 들었다. 새로울 바 없는 내용이었다. 금방 묻히고 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목소리에는 힘이 있고, 의미가 있다. 그리고 내 마음 속에는


꼬깃꼬깃한 A4 용지와 손글씨, 떨리는 목소리와 반복되는 인사
그 모습도 소리도 오랫동안 남아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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