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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PD May 14. 2019

배달앱 안 써본 사람, 저요

안 쓰고도 살만 합니다


라이더 유니온 박정훈 위원장의 페이스북 글이다. 웬 순대국집 사장이 배달 오더가 뜨면 10분 안에 가게로 와서 음식을 받고 10분 안에 소비자에게 배달하라고 써놨다. 이거 못지킬 거면 배달하지 말랜다. 비오거나 눈오는 날은 5분 추가해서 25분 안으로 완료하란다. 



사장이 이런 공지를 붙여놓은 맥락을 추정해보자면, 요즘 배달앱 라이더들이 콜을 중복해서 받는다고들 한다. A치킨 배달 주문을 받았으면 치킨을 사서 그걸 주문한 사람에게 바로 가는 게 아니라 동선에 따라 중간에 B카페에 들렀다가 C순대국을 들르기도 하고 뭐 그러다보면 A치킨 주문한 사람은 그냥 치킨 배달을 시켰을 때보다 늦게 받기도 하고 뭐 그런 거다.


배달노동자를 직접 고용하지 않고 공유경제 한답시고 콜에 따라 수수료를 받게 해놨으니 라이더로서는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주문한 음식이 늦어지니 당연히 불편을 말하게 되고, 음식점 사장들은 자기가 고용한 사람도 아니면서(=자기가 안전을 책임지는 것도 아니면서) 이런 식의 압박을 가하게 되는 것이다.


업체 사장이 이런 요구를 할 수 있는 권한이 뭘까. 없지 않나? 사실 이 가게에서 파는 음식을 구매한 것은 라이더고, 라이더가 소비자에게 다시 파는 방식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중간에 끼어있는 배달앱이 돈의 흐름을 관리하다보니 판매와 구매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아 자기들도 아마 헷갈릴 것이다. 

혁신이니 공유경제니 하는 구호들이 주목받으면 실제 산업을 굴리는 사람은 가려진다. 배달앱 덕분에 소비자들이 편해진 건 맞지만 난 배달앱이 새롭게 창출한 부가가치에 비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혁신'의 가치가 과하다고 생각한다. (배달앱 없던 시절 배달이 안되던 업종에 대해선 확실히 혁신이라 할 수 있겠지만
)


특히 지금의 배달앱 기업들이 법적으로나 시장 원리로나 잘못한 건 없더라도 윤리적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수수료 문제나 자영업자들에게 광고 경쟁 시키는 문제가 수도 없이 지적됐다.(그나마 슈퍼리스트는 폐지됐다니 다행이다) 라이더가 과도한 콜을 받거나 과속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창업주가 라이더들 사고 나면 쓰라고 보험금 엄청나게 기부하면 '윤리적' 기업인가?

음식을 만드는 사람, 그 음식을 실제로 운반하는 사람과 비교할 때 배달앱은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안정적으로, 많은 수익을 올린다. 서비스/기술 개발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수익의 비대칭성이 문제라는 것이다. 자본의 관점에서 보면 기술 투자 자체가 리스크지만, 음식점과 배달노동자가 없이는 성립할 수 없는 산업에서 배달앱이 가져가는 수익이 '얄미운' 것은 어쩔 수 없다. 

뭐 이런 생각 때문에 배달앱을 안 쓰고 있는데, 배민이 얼마 전부터 배민 한 번도 안 쓴 사람한테 꽤 큰 금액의 쿠폰을 뿌리고 있더라. 니들이 그런다고 내가 쓸 것 같니. 됐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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