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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PD Jul 12. 2019

좋은 의도와 나쁜 결과

반일만세 안하면 장사가 안되나


지난 주부터 뉴스를 보면 이게 한국 뉴스인지 일본 뉴스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어디서는 나라가 망하네 반도체 산업이 망하네 이러고 있는 와중에, 어제 외국인 기관투자자들이 삼성반도체랑 SK 하이닉스 주식을 사제꼈다고 한다. 반대로 개미들은 열심히 팔아치웠다.내가 주식 투자도 안하는데 경제방송을 듣는 이유는 종합지에서 이런 기사를 톱뉴스로 잘 안 다루기 때문이다. 


지금 왜 기관투자자들이 중장기적으로 반도체 기업의 가치를 높게 보는지와 별개로, 개인 투자자들이 당장 반도체 기업 주식을 팔아제끼는지 그 이유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개미들이 주로 보는 언론에서 생난리를 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산업 전망에 있어서 잘못된 시그널을 주는 것도 문제지만, 이 이슈를 다루는 언론의 태도에 있어서 정말 문제적인 것은 필요이상으로 반일감정을 자극하는 것이다.


대학원에 다닐 때 글쓰기의 효과가 어느 지점에서 발생하느냐는 토론을 했던 기억이 있다. 나아가 저자의 의도와 글쓰기의 효과가 다를 때, 저자가 대체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느냐.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보고 있으면 그게 보는 사람 책임이냐 저자책임이냐 등등. 데리다가 뭐라고 했네 푸코가 뭐라고 했네 마네 어쩌고 논의의 단편들이 기억 저편에 둥둥 떠다니는데 뭐 결론이 어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나는 좋은 의도가 나쁜 결과에 대한(더군다나 그 나쁜 결과가 뻔히 예상되는 것이라면) 변명 혹은 면죄부가 되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지금 대부분의 언론에서 한일관계를 다루는 방식은 거의 반일 만세, 민족주의 만세라는 분위기로 향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대놓고 아베의 우경화를 용인하는 국내 보수정치/언론의 문제도 끼어있긴 하지만, 어쨌든 정치, 외교, 경제 전문가들은 이 문제를 반일 감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지 않는 추세다.  


언론도 반일만세라고 소설을 쓸 수는 없으니 이런 전문가들 연결하고 초대해서 인터뷰도 하고 코멘트도 따고 한다. 그래서 내용을 잘 톺아보면 종합적인 이야기들이 많은데, 그 결과물의 이른바 '야마'나 '제목'은, 그리하여 그 콘텐츠가 최종적으로 수용자에게 일으키는 효과는 결국 반일 만세 민족주의 만세로 수렴되는 분위기다. 


전문가를 통해 사안에 심도있게 접근해보자는 건 좋은 의도다. 그렇게 종합적인 이야기를 해놓은 콘텐츠가 반일 만세 민족주의 만세로 소비되는 것은 나쁜 결과다. 유명인 가족을 팔아 사기 행각을 벌이는 문제를 폭로하는 것은 좋은 의도다. 그로 인해 그 유명인의 사생활이 누군가의 안주거리가 되는 것은 나쁜 결과다. 대체 그 나쁜 결과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당연히 극우 아베 비판해야 하고 강제징용/일본군 성노예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을 고민해야 하지만, 지금 언론이 반일독립투사가 된 것처럼 포지셔닝하는 분위기는 뭐랄까 좀 크리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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