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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PD Jul 23. 2019

노회찬이 부른 이름

그리고 아마도 불렀을 이름


매일 새벽 4시면 어김없이 강남 빌딩 청소를 위해 구로구 가로수공원에서 6411번 버스에 오르는 사람들. 노회찬이 그들의 이름을 부르기까지, 우리는 그들의 존재를 잊고 있었습니다.

- 노회찬재단 홈페이지 조돈문 이사장 인사말


사회노동이슈를 다루다 보면, 노회찬이 불렀을 법한 이름들이 나타난다강남역 삼성전자 사옥 앞, 아마도 반올림 천막이 위치하던 자리로 기억되고 있을, 혹은 누군가에겐 아무 의미도 없을 그 공간에 44일째 철탑 위에 올라가 농성하는 노동자가 있다. 김용희. 2주 전인 7월 10일, 그는 1평도 안 되는 CCTV 철탑 위에서 만60세, 그러니까 정년을 맞았다. 무노조경영 원칙의 삼성에 맞서 싸웠던 90년대부터 그가 겪은 고초의 역사는 ‘기구하다’고 해야할지 ‘끔찍하다’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단식 51일, 고공농성 44일로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부족했나보다. 특별히 노동문제에 관심을 가진 언론이 아니라면 그에게 마이크를 주지 않았다. 그래서 어제 청와대 앞에서는 김용희 씨의 복직을 촉구하는 시민사회원로-중진들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오늘 방송할 초대석 준비로 주말에 원고 작업을 하다가 기자회견 보도자료를 받았다. 쟁쟁한 이름들 사이로 조돈문 노회찬 재단 이사장의 이름이 보였다. 월요일에 출근하면 김용희씨의 이야기와, 오늘 1주기를 맞는 노회찬에 대한 이야기를 묶어서 인터뷰로 다루자고 발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2주 사이 두 명이 방송에서 울었다.


10일 수요일엔 조승수 노회찬재단 사무총장이었고, 22일, 어제는 조돈문 노회찬재단 이사장이었다. 조승수 사무총장은 인터뷰에서 노회찬재단의 추모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조돈문 이사장은 삼성전자 사옥 앞 철탑위의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인터뷰 말미의 같은 질문에서 그들도 울고, 나도 울었다. 


노회찬 의원에게 한 마디 해보세요, 라는 질문에.


조돈문 이사장의 눈물에 진행자는 “이렇게 보내드리기 힘든 분입니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렇다. 1년이 지나도, 어쩌면 1년이 지났기에 더욱 아픈 마음이 있다. 노회찬을 기억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전해주던 이도, 노회찬이 연대했던 노동자의 목소리를 전하던 이도, 노회찬 이름 석자에 무너지고, 그 목소리를 듣던 나도 무너지는 날들이다. 



원고에 쓰고 싶었지만 못 썼던 질문이 있다. 


노회찬 의원이 지금 계셨다면,
철탑 위의 김용희 씨를 바라보고 있었다면,
무슨 일을 했을까요? 


노회찬의 삶을 생각하면 크게 무례한 질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소위 '팔리는' 제목 뽑기도 더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왠지 묻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저 철탑 위의 노동자가 무사히 내려오게 하기 위해,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라고 물을 수 있는, 그 당신이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싫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덧. 노회찬을 애도하는 수많은 방송과 기사가 있었지만, 나는 팟캐스트 그알싫의 279a.민하문구:노회찬의 진보정당 기초공사 사반세기, 가 최고였다고 생각한다. 그가 마지막까지 힘썼던 진보정당 운동을 다루고 있고, 진보정당의 안팎에서 그를 바라보던, 역시나 진보정당 운동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이가 풀어낸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주에 방송된 한겨레 디스팩트는, 본편 구성은 아쉬웠지만 맨 마지막에 <6411번 버스를 아십니까> 연설이 통째로 들어가 있다. 방송이 업로드 된 당시에, 앞부분은 방에서 혼자 운동을 하면서 듣다가 연설 파트가 시작되고 도저히 딴 짓을 할 수가 없어 요가매트 위에 앉아 멍하니 그의 목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마음 같아서는, 오늘 방송 클로징 시그널 대신 6411번 버스를 아십니까 연설이 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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