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쩌다 PD Jul 28. 2019

기수파괴가 불편한 이유는

그렇다고 서열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죠



◆ 정소연> 선배가 조직 내에서는 더 낮은 지위가 되면 이 사람을 어떻게 대우를 해야 하는가. 무슨 일을 맡겨야 되는가. 어느 지역으로 보낼 것인가 이런 게 가이드라인이 없고 기수대로 하는 수십 년 동안 축적된 매뉴얼이 딱 있는 상태잖아요.

◆ 오지은> 뮤지션끼리이다 보니까 너무 이상하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왜 멀쩡히 일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관둬야 해, 이런 생각도 들고 그것도 되게 인적 자원의 손실이고.


나이와 기수라는 서열에 얽매이지 않는 다른 관계맺기 방식, 조직이라면 다른 업무 배분 방식, 종합적으로는 다른 삶의 방식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해오던대로' 할 수밖에 없다. 그게 주는 이익(롤플레잉의 편리함)과 피해(서열이 깡패라 발생하는 비합리적인 결정들) 중에 무엇이 더 큰지 저울질이 필요한데, 이익을 누리는 사람과 피해를 입는 사람이 다른 경우가 많아서 바뀌기는 쉽지 않다.


라디오에서 다루기는 좀 복잡한 얘기라 잠깐 터치하고 지나가는 정도로만 언급됐는데, 나는 모두가 수평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게 꼭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특히 사회생활, 그러니까 사적인 호불호를 넘어 일을 함께 해야하는 집단에서는 권한과 책임의 명확한 분배가 필요하고, 대부분의 업역에서는 그 분배에 '경험'이 무시못할, 합리적인 기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사적인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평등해, 라고 외치는 것은 사회적 지위든 나이든 경제력이든 성별이든 알게모르게 존재하는 두 사람 사이의 권력관계를 가리는, 기만적인 선언일 수가 있다.


중요한 건 기계적으로 평등한 것이 아니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의 관계맺기 방식에 만족하느냐의 여부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남들 하는대로 수직적으로 살자는 게 아니다. 수평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이런 장애물을 뛰어넘는데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방송에서 정소연 변호사님도 언급하시지만, 그런 에너지를 들인다는 것은 생각보다 지치는 일이다. 그렇기에 모든 관계를 수평적으로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일이고, 관계마다 들이는 에너지가 차별적일 수밖에 없다. 평등하고 친밀한 인간관계가 꼭 많아야만 좋은 것도 아니고, 어느 정도 수직적인 관계설정이 주는 거리감이 오히려 나쁘지 않은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대개의 조직은 워낙 서열문화가 강하고, 그로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손실이 크기 때문에 -.- 좀 더 유연해지기 위한 시도는 필요하다고 본다. 
안타깝게도 그런 시도에 좀 더 적극적이어야 하는, 우리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서열의 윗자리를 차지하고 계시는 분들은 지금의 질서에 안주하는 게 너무도 편하다는 문제가 있을 뿐이다. 



이 칼럼에서 지적하는, 한국 조직들의 학습지체현상과 퇴행적인 문화는 (인류애가 별로 남아있지 않은 입장에서 말하자면) 사실 필연적인 귀결이다. (나도 마찬가지인데) 대부분의 사람이란 자기중심적이고 게으른 '본능'이 타인을 존중하거나 적극적으로 학습하는데 필요한 '의지'보다 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래서야 인간들의 집합인 공동체나 조직이 발전할 수가 없으니 끊임없이 저 의지를 추동하는 시스템의 외적 개입이 필요하다. 그걸 만들어내는 데 실패한 것이 지금 학습지체현상을 겪고 있는 대다수 한국 조직의 과오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매거진의 이전글 노회찬이 부른 이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