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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PD Aug 01. 2019

공짜 카톡방으로 치른 목숨값

목동 수몰 참사에서 반도체 규제완화까지


덥고 추울 때가 아니면 따릉이로 출근한다. 출근길에 목동 오목교를 지나며 바라보는 안양천은 참 평화롭다. 봄이 되어 벚꽃이 흐드러지면 짬을 내어 꽃놀이를 가기도 한다. 목동 중심가에서 안양천 둘레길로 걸어가는 길에는 빗물 펌프장이 있다. 그저 꽃놀이 가는 길에 있는 거대한 건물, 정도로 기억하고 있던 ‘목동 빗물 펌프장’이 끔찍한 수몰사고로 뉴스에 오르내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10만원짜리 사이렌도 없었다

허망한 죽음 앞에 ‘만약에’를 말하는 것은 조심스럽다. 그래도 만약에 수문 개방시 울리는 사이렌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시설 점검 노동자들이 좀 더 빠르게 상황을 인지하고 대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 사이렌 가격은 10~20만 원 정도라고 한다.



‘단톡방 핫라인’ 미확인이 문제가 아니다


서울시와 공사현장 관계자들이 시운전을 위해 만든, 그래서 현장 상황 공유에 쓰이던 단체카톡방이 있었다고 한다. 그 카톡방에 호우주의보 소식이 30분 늦게 전달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서울시 관계자는 “비상상황을 알리는 다른 단톡방이 있어서 굳이 핫라인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는데, 비상상황을 ‘단톡방’으로 알린다? 사기업의 메신저, 심지어 재난문자처럼 경보가 울리지도 않는 단톡방을 ‘핫라인’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은 기가 막힌 수준을 넘어 절망적이다.



이 기사는 중요한 사실을 보도하고 있지만 야마는 동의하기 어렵다. 핫라인을 가동하지 않아서 골든타임을 놓친게 문제가 아니라 단톡방을 핫라인 취급하고 있는 상황 자체가 문제다.


노동자들의 목숨값은 얼마인가


해당 서울시 관계자는 단톡방 운운하기에 앞서 "이미 다른 경로를 통해 호우주의보 소식이 전달됐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게 상식이다. 빗물 저류 시설을 오가는 노동자들에게 호우는 목숨을 위협하는 재난다. 이들의 목숨을 소중히 여겼다면 비용을 들여 안전 확보를 위한 시스템을 구축했어야 한다. 그런데 10만원짜리 사이렌도 없었고, 비상상황을 전파하는 통로랍시고 있는 게 ‘공짜’인 단톡방 뿐이었다. 뒤늦게나마 위험을 알리려 뛰어든 시공사의 30살 노동자와, 이미 위험지대에 들어가있던 협력업체의 24살 외국인 노동자, 66살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대체 시공사는 얼마의 비용을 썼는가. 양천구청과 서울시는 무엇을 했는가.


박선영 전 한국일보 기자는 이른바 구의역 김군 사고를 두고 “그의 월급이 144만 원이 아니라 441만 원이었어도 ‘2인 1조’의 작업 원칙이 안 지켜졌을까”라고 썼다. 목숨값, 그러니까 노동자의 안전에 쓰는 비용은 사람값, 그러니까 임금과 비례할지도 모르겠다.


박선영, 1밀리미터의 희망이라도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사망한 김용균씨의 죽음에도 ‘2인 1조 원칙이 지켜졌더라면’이라는 꼬릿말이 붙었다. 산재 사망은 대개 그렇다. 사람 목숨보다 비용 절감을 우선해서 발생한다. 특히나 '값싼' 노동자들이 산재 위험에 노출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비정규직, 하청, 이주노동자, 청년 등등 안전의 권리를 주장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을수록 많이 죽는다. 그 안타까운 죽음 앞에 사회는 이번엔 누구 잘못이냐며 탓할 사람을 찾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라 할 수 있는 기업살인처벌법 제정을 위해 촛불까지 드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리고 이 법의 제정에 앞장서도 시원찮을 ‘촛불정부’와 여당은 일본이 쳐들어온다며 반도체 관련, 화학물질을 다루는 사업장에 대한 규제 완화를 운운하고 있는 상황이다. 목동 수몰사고에서 갑자기 웬 반도체 산업 규제완화?


이건 다 사람 목숨에 대한 이야기다


공짜 단톡방 따위에 사람 목숨을 맡기는 천박한 인식이 OECD 산재 사망률 1위를 이어가는 원동력이라는 뜻이다.




원래 마지막 문장에 '그 잘난 촛불정부에서조차 OECD 산재 사망률 1위를 이어가는'이라고 썼다가 2017년 통계가 아직 나오지 않아서 수정했다. 하지만 2017년 통계가 나와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2018년에도 이 모양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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