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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PD May 04. 2017

국가가 허락한 평생교육 #3

'인정'이 필요한 학습

글 순서


1. 통계로 나타나는 평생교육의 현실

2. 주요 평생교육 정책: 국가평생교육진흥원 사업 분석

3. '인정'이 필요한 학습

4. 대학과 평생교육의 상호의존

5. 국가가 허락한 평생교육



학점은행제는 “학교 밖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형태의 학습 및 자격을 학점으로 인정받고, 학점이 누적되어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학위취득이 가능한 제도”이다. 정부가 인정하는 학점원(대학, 평생교육원, 직업전문학교, 학원, 기타 평생교육 시설, 학점인정 대상학교)이나 국가기술자격, 무형문화재, 독학학위제 등을 통해 학습한 경험을 학점으로 환산하고, 140학점 이상을 취득하면 학사학위를 수여한다(전문학사 80학점, 3년제 전문학사 120학점). 학점은행제 학습자 규모는 2014년 115,461명이었으며, 같은 해 학위를 수여받은 사람은 80,767명이었다. 2014년 대학 졸업자 수가 301,606명이었으니 학점은행제 학위 수여자는 대학 졸업자 수의 1/4을 넘어서는 수준에 이르렀다. 


학점은행제 (출처: 국가평생교육진흥원)


학위를 수여한다는 점에선 독학학위제도 유사하다. 독학학위제를 활용하면 11개 전공에 대해 교양과정, 전공기초, 전공심화, 학위취득종합시험의 네 단계 시험을 거쳐 학사 학위를 받을 수 있다. 어떤 형태로든 교육과정에 참여해야 하는 학점은행제와 달리 독학학위제는 시험만 통과하면 되기 때문에 개념상으로는 ‘독학’을 통해 학위 취득이 가능하다. 좀 더 복잡하게 운영되는 측면이 있지만, 고등학교 학력까지 시행되고 있는 검정고시의 대학 버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독학학위제 (출처: 국가평생교육진흥원)


평생학습계좌제는 학위 수여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는 점에서 학점은행제나 독학학위제와 조금 다르다. 개인의 다양한 학습경험을 온라인 학습계좌에 등록하고 그에 대한 증명서를 발급해 진학, 취업 등에 활용할 수 있게 한다는 취지이다. 학습과정에 대한 국가의 평가인정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학점은행제와 유사하나 개념상 평생학습계좌제는 학위보다는 개인의 학습이력관리에 보다 방점이 찍혀있다. 학습이력에 대한 증명과 활용이라는 점에서 학위보다는 오히려 자격과 유사하다.


평생학습계좌제 (출처: 국가평생교육진흥원)


이렇게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다양한 학습경험을 인정하는 정책을 수행하는 이유는 평생교육의 이념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인간은 평생에 걸쳐 가르치고 배운다. 다시 말해, 한 개인에게 의미 있는 배움과 성장의 경험은 학교라는 형식교육기관 바깥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렇지만 여전히 사회적으로 ‘배움’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학력이나 학위가 요구된다. 따라서 개인의 다양한 학습경험에 대해 학위나 학위와 유사한 자격을 부여하는 것, 다시 말해 사회적으로 그 다채로운 배움을 인정하는 것은 평생교육의 이념을 제도적으로 구현하는 가장 단순명쾌한 방법이다.


문제는 이러한 접근법 자체가 가지는 모순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학점은행제와 독학학위제는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배움의 방식을 학교 교육이라는 형식성에 한정짓지 않고 다양화하겠다는 취지를 말하지만, 결과적으로 남는 것은 학위이다. 평생학습계좌제도 학력이나 학위를 전면에 내걸진 않지만 실제 홈페이지에서 인정 프로그램과 교육기관을 검색하면 고졸 수준까지의 검정고시와 관련된 내용이 많다. 당연히 독학학위제, 학점은행제와도 연관이 되어 있으며 일부 전문대학에서는 평생학습계좌제와 학점 취득을 연계시키는 방안을 꾸준히 요구하는 중이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의 학위 및 자격 취득 관련 사업의 목적은 사회적으로 다양한 학습경험을 인정함으로써 다채로운 배움을 촉진하자는 것이 아니라, 학위 혹은 학위와 유사한 자격이 필요하지만 학교에 다니기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들에게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경로를 여러 방향으로 열어주자는 것에 가깝다. 이런 접근은 (과장을 좀 보태면) 학력이나 학위가 가지는 권위를 해체하고 사회적으로 배움과 성장의 의미를 확장하기 보다는, 모든 배움을 다시 학교로 수렴시키는 구조를 만들어낸다. 

물론 우리 사회에서 배움을 증명하는 지배적인 방식이 학위이기 때문에, 일단은 그 현실을 인정하되 학위 취득의 경로를 다양화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학교교육이 가지는 경직성을 해체하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미 각 정책의 운영방식에서 살펴보았듯이 어떤 경험에 대해 국가가 관리하는 학위와 자격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평가가 수반된다. 교육과정에 대한 평가든 교육기관에 대한 평가든, 결과로서의 자격증이나 시험성적에 대한 평가든 정부의 기준을 통과한 영역 안에서 이뤄지는 학습경험만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기준이 생기면 필연적으로 그 기준에 맞추기 위한 표준화가 따라붙는다. 표준화와 다양성은 양립하기 어렵다. 결국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학위나 자격 취득과 관련된 사업에서 내세우는 “다양한 학습경험”은 학교스럽지만 학교에서 직접적으로 하지 않는 것들에 가까워 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굳이 학점이나 학위, 자격을 부여하는 정책을 수행하는 이유는 아무리 개인적 차원에서 의미가 있는 성장의 경험, 학습이 이뤄졌다 하더라도 그 경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배움이 오롯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증명하기 위한 것이 되는 까닭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바로 교육의 다음 단계, 취업이다. 이렇게 평생교육 정책이 자발적이고 다채로운 배움을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취업시장에서 증명하기 위한, 또 증명이 가능한 학습의 영역을 넓혀가는 모습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의 다른 사업들에서도 확인된다.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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